하자인문학 강좌를 열며 - 김찬호

삶의 언어로 세상을 클릭하자

하자인문학 강좌를 열며 - 김찬호


"집이 잘사니까."
"잘 산다고? What do you mean?"

내 강의를 들었던 어느 대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캐나다인 룸메이트에게 무심코 했던 말에 돌아온 질문이었다. 그 학생은 설명을 해 주긴 했지만 한국문화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언어든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표현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질문을 받은 우리는 대답이 궁색해진다. ‘잘 산다’는 말을 영어로 옮기면 무엇일까? ‘live well’일까?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well-being’일까? 그렇지 않다. 그냥 ‘be rich’이다. 그래서 ‘못 산다’는 말은 가난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부유한 것이 ‘잘’ 사는 것의 전부인가.

행복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절대 빈곤선 이하에서는 물질적인 부와 비례하여 행복감이 증진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상관관계가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인간을 불행하게 할 만큼의 열악한 조건에서는 그 외적 상황의 개선만으로도 행복해지지만,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는 삶의 다양한 기쁨과 보람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우리가 꿈꾸는 행복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경제적으로 꽤 윤택한 사람들 가운데 불행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경우가 많은 까닭은?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상황 가운데 상당 부분은 상황 그 자체가 정말로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다만 남보다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도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뭔가를 더 가지거나 누리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왜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행복과 불행을 가늠할까? 삶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거나 만들어 낼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잘 살아 보세’를 외치면서 가난에서 재빠르게 탈출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성취는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이뤄진 외형적 성장 속에서 마음의 문화 유전자는 볼품없이 망가져버렸다.

인문학의 위기 그리고 그 대안이라는 것도 바로 그러한 상황과 맞물려 이해해야 한다. 인문학자들이 더욱 전문적인 학술 연구를 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것은 우리 사회와 삶에 인문학적인 가치가 스며들고 살아 움직이는 풍토다. 인문학자 가운데서도 자신의 생활 속에서 그 가치를 몸소 구현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위기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지금 인문학은 문화 운동을 통해서 재생될 수 있다. 자기를 성찰하고 세상을 널리 조망하는 학습 공동체를 통해서 다시 그 씨앗을 뿌리기 시작해야 한다.

이번 가을에 하자센터에서 개설하는 인문학 강좌도 그런 취지에 입각하고 있다. 『문화의 발견 : KTX에서 찜질방까지』라는 책을 중심으로 도시의 다양한 생활공간들을 탐사할 예정이다. 워낙 엄청난 변화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회에서 우리의 경험들이 미처 해석되기도 전에 증발되고 또 다른 경험으로 덮어씌워지기 일쑤다. 이 강좌에서는 구체적인 현상들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문화의 작동 원리를 파헤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그 실마리들을 찾아보려 한다. 시적인 감수성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깊은 공감력으로 타인을 이해할 때 우리의 삶은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다. 인문학 공부는 그러한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청주의 어느 임대 아파트 화단에 몇 달 전에 팻말 하나가 나붙었다. ‘이 꽃들을 살려 주세요’ 내막은 이러했다. 수도요금이 밀린 주민들이 점점 늘어나 단수(斷水)라는 행정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수도국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화단에 꽃을 심고 그 팻말을 붙이기로 한 것이다. 주민들이 계속 요금을 체납하면 수도가 끊기고 그렇게 되면 이 꽃들이 말라죽을 테니 도와달라는 애원이었다. 다행히 주민들은 그 메시지를 너그럽게 받아들여 밀린 요금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문학적인 소양은 이렇듯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섬세하게 읽어 내는 능력이다. 의미를 생성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소통하는 훈련으로 그 힘이 키워진다.

잘 산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쉬운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그것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배움을 통해 자기를 연마하지 않으면 천박한 풍조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삶을 고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키워 가지 않은 채 외형적 조건을 부풀리는데 골몰할 때 인생은 저속해진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급속한 질주 속에서 우리는 그 능력을 고갈시켜 왔다. 그리고 고공행진으로 이어가던 경제 성장이 느닷없이 추락하자 무엇으로 삶을 수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다. 직장에서 퇴직한 중년 남성들이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 시간을 곤혹스러워 하고 일상이 공허해지는 것도 그와 비슷한 정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내려갈 때 / 보았네 / 올라갈 때 / 보지 못한 / 그 꽃’

고은 선생의 ‘그 꽃’이라는 시다. 인문학이란 바로 그 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성장과 희망의 오르막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좌절과 낙심의 내리막길에서 새삼 눈에 들어오는 존재의 의미라고 해야 할까. 그것을 원점으로 인생의 설계도를 차분하게 구상하는 시공간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그것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배움을 통해 나와 타인의 존귀함을 자각할 때 삶은 고결해질 수 있다. 소통과 돌봄으로 서로를 아름답게 클릭할 수 있다. 이번 인문학 강좌에서 그런 만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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