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평가서 - 노디 (11/25)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할까;
그저 벌써 마지막 과제를 해야한다는 자체가 슬프다라는 느낌밖에는.
이 과제를 그레이스에게 듣고 나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써나가야할까 틈틈히 고민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굉장한 '무언가'를 잘 적어나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제일 앞섰다.
세이렌의 메일을 보고서 인문학시간에 조금조금씩 적어놓았던 것들을 찾기시작했다.
'정리 좀 잘해둘껄. . .'하는 후회가 이제서야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마지막인만큼 정말 정성스레 적고 싶었는데….
그레이스가 커피나무팀들도 '쥬니어'니까 인문학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학교시절의 노디가 생각났다.
늦게 '책읽기'의 기쁨을 알게 된 노디는 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어렸을 적에 생각해왔던 것이 '철학'의 일부분이라는 걸 알게되고서부터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다가 사서선생님의 추천으로 '철학에세이'를 읽었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노디는 철학과 '인문학'은 관련이 많이 있을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노디는 듣겠다고 했다.
그렇게 간절하다거나 꼭 듣고싶다거나는 아니었다. 단순히 '권유'로 듣는다였겠지.
약간의 들뜬 마음으로 시작했던 첫수업, 골든벨.
책을 읽지않은 상태였기도 했고 부담감도 긴장감도 없어서일까 그저 그랬다.
골든벨을 끝낸 9월 13일, 첫강의를 시작으로 몇주간 영어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공자말씀이 적혀있는 그 종이는 약간의 꾸깃함과 번진 펜자국이 남아있다.
외워서 낭독하는 것이 숙제였다. 그 때 정말 긴장했었다. 그레이스와 함께 번역도 해보고, 돌아가며 읽기도 했다.
모르는 단어는 받아적기까지도 했지만 외우지는 못했다. 다음 강의시간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께서 '낭독 있다 할껀데. . .'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었다. 그때, 정말 긴장+긴장=초긴장상태였다.
게다가, 그 전에 토토였나? 리사였나? 누군가 영어로 된 어떤 것을 읽었었다. 몇 명이 읽었었는데,
다들 대단한 발음을 가지고있었다. 그 때문에 아마도 더 긴장햇던 것 같다. 하지만, 영어낭독은 하지않았다.
시간을 봐가면서 얼마남지않았음에 좋아하면서도 '끝에 시킬지도 몰라'하는 초조함도 있었다.
시작에 '영어'가 나와서인지 '인문학'은 점점 멀어져가고있었다. 하지만, 싫다거나 하고싶지않아는 아니었다.
'들을만하다'정도였다. '영어'와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나서는 '과제'의 부담감이 생겨났다.
블로그에 가서 다른 쥬니어들의 글을 보며 기죽다보니 시작은 했으나 끝을 보지못했다.
'생각'은 시작했는데 다른 쥬니어들의 글을 보니 내 '생각'이 너무 비참해졌다.
그레이스와 함께 '일과요리'팀 회의를 하는데 나만이 아니라 가인, 산, 이안, 예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뭔가 굉장한 위로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가짐을
고쳐먹었던 것 같다. 너무 '인문학'을 쉽게 생각하고 있지않냐는 질문에 굉장히 찔렸다.
한 통로를 살짝만 건들여줌으로써 전구의 불이 들어왔다.
'일과 요리'팀에서 발표하게 된 '음악다방'은 굉장히 쑥쓰럽고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아마도 그때부터 인문학이 즐거워지지않았나한다.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가장 뿌듯하다거나 즐거웠다거나 하는 '과제'를 뽑으라면 아마도 50년후의 나의 모습을 쓰는 것.
'노인'의 고독을 초점으로 적었던 '뿡'의 과제를 들으며 '아, 난 과제를 잘 못한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건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의 과제는 내 스스로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나의 초점은 발전한 50년 후였으니까. 상상에 상상을 덧붙이면서 기존의 '앨리스'를 투입시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느낌이 굉장히 두근두근거렸었다. '똥이야기'도 그렇고. 고메는 굉장히 '현실적'이었지만,
아니, 모두의 과제들은 '현실적'이었다. 나는 너무 앞서간걸까. 다른세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내 '과제'가 비참해지지는않았었다. '인문학'수업을 집중해서 들으면서
내가 눈에 띄게 바뀐 것은 '자신감'이었다. 예전의 '노디'의 흐물흐물함보다는 약간의 '여유로움'과
'자신감'이 생겼다. 아마 예전엔 카페'그래서' 의 '긴장감'도 안 풀렸을 수도 있고 여러모로 다른 것들도
작용했겠지만은, '인문학'을 통해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난 것만은 확실하다.
인문학은 강의가 늘면 늘수록 너무나도 재밌어졌다. 강의 시작 전부터 흘러나오는 음악,
해석과 함께 듣고 부르는 음악,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낭독.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을 비롯한 모든 음악들은 뭔가를 꿈틀꿈틀거리게 했다.
첫 강의였던가? 'Rhythm of the rain'은 "Singing in the rain'을 떠올리면서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었었다.
정말 좋은 노래들이 많았지만, 다 적지 못한 게 안타깝다. 내가 집중해서 듣지못한 강의들도
강의를 들으며 얻은 것들을 적지못한 것들도 안타깝다. 김용택시인의 '별하나'라던가,
박완서소설가의 '친절한 복희씨'라던가. '인문학'을 하면서 예전에 좋아했던 '시'들의 구절이
떠올라서 가끔 '그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좋지만은 않지만, 누군가가
떠올리면 '이러면 안돼'라는 생각이 더 좋지 않다고 했다. 생각나면 생각하고, 울고싶으면 울고,
보고싶으면 보면된다. 뭔가 다른 방향으로 흘려가려는 것 같다. 하고싶은 이야기 많은데.
'친절한 복희씨'를 들으면서 '나'를 돌이켜봤다. '할머니댁'에 제일 자주가는 '나'.
자주는 가지만, 자고가라는 말에 둘러대고는 이모네서 잔다. 의도치않게 할머니가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노인의 '고독'에 대해 강의를 들으며 우리 할머니도 그렇겠구나. 할머니가 이해되면서도 막상 닥치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은 어쩔수가 없다. 그래도 조금은 더 할머니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강의이지않았을까;
'물'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항상 알고 있었지만 실천은 못햇던 '물아껴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미나마타'에 동영상은 굉장히 무서워서 정말 못보겠더라. 일본의 공포영화같았다.
'일본영화'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얼마전에 알게 된 건데, '일본영화'는 '잔인한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게끔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그랬다. (녹차의 맛도!) 아아, 이 얘기는 왜 해버려서 '일본영화'로 들어가려는 걸까;
알고는 있지만 부딪히기가 무서워 피해가려던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되었다.
예를 들면, '어른'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거지?에 대해 꼬리를 물다가.
물론, 내가 아는 '어른'들은 상식적인 '어른'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어른'들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르는 어떤 '부분', '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놀라기도 하면서 상처받는다.
뭐 그런 정의를 내 스스로 내려버렸다. 안 좋은 거지만, 요새 들어 '상처받아버렸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 원인을 분석하다보니 아무래도 내 탓이 제일 크겠지만.
'인문학'은 어쩌면 '작은 것'으로 끝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김찬호 선생님'의 '진심'이 통했던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께 '인문학 강의 너무 좋아요'라던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아마 내 진심도 통했을 꺼라 믿는다.
강의가 몇번 안 남았다고 말해주는 세이렌의 말을 들으며 울적해졌다.
이번 골든벨 때의 토토에게 준 선물에 들어있는 김찬호 선생님의 글을 들으며 정말 울 뻔했다.
굉장히 감동적이면서 슬펐다. 항상 '마지막'은 '시원섭섭'이다. 이번 인문학은 '시원'하지가않다.
아무래도 내가 뒤늦게 열정적이었던 영향도 있겠지만. '슬프다'를 대체하는
어떤 '감정'이 필요한데 적절한 표현이 뭔지 모르겠다. 정성스레 쓸려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지
글도 뒤죽박죽에 정리도 안된다. 아아, 마지막이라니. 아직 친해지지못한 쥬니어들이 굉장히 굉장히 많은데….
모두가 다 친해질때까지- 모두모두모두가! 그때까지 인문학 계속할 수 없는 걸까; 서울투어?였던가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놀러간다니. 공항투어도 꼭 갔으면 좋겠고, 또 다른 투어도 갔으면 좋겠다.
투어로 인해 강의가 계속계속 길어졌으면. . 이야기하고 싶었던 무언가'가 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하고 아즈망가 속으로~. 아아- 에세이'조차 끝을 내기가 싫어진다.
그저 벌써 마지막 과제를 해야한다는 자체가 슬프다라는 느낌밖에는.
이 과제를 그레이스에게 듣고 나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써나가야할까 틈틈히 고민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굉장한 '무언가'를 잘 적어나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제일 앞섰다.
세이렌의 메일을 보고서 인문학시간에 조금조금씩 적어놓았던 것들을 찾기시작했다.
'정리 좀 잘해둘껄. . .'하는 후회가 이제서야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마지막인만큼 정말 정성스레 적고 싶었는데….
그레이스가 커피나무팀들도 '쥬니어'니까 인문학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학교시절의 노디가 생각났다.
늦게 '책읽기'의 기쁨을 알게 된 노디는 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어렸을 적에 생각해왔던 것이 '철학'의 일부분이라는 걸 알게되고서부터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다가 사서선생님의 추천으로 '철학에세이'를 읽었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노디는 철학과 '인문학'은 관련이 많이 있을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노디는 듣겠다고 했다.
그렇게 간절하다거나 꼭 듣고싶다거나는 아니었다. 단순히 '권유'로 듣는다였겠지.
약간의 들뜬 마음으로 시작했던 첫수업, 골든벨.
책을 읽지않은 상태였기도 했고 부담감도 긴장감도 없어서일까 그저 그랬다.
골든벨을 끝낸 9월 13일, 첫강의를 시작으로 몇주간 영어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공자말씀이 적혀있는 그 종이는 약간의 꾸깃함과 번진 펜자국이 남아있다.
외워서 낭독하는 것이 숙제였다. 그 때 정말 긴장했었다. 그레이스와 함께 번역도 해보고, 돌아가며 읽기도 했다.
모르는 단어는 받아적기까지도 했지만 외우지는 못했다. 다음 강의시간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께서 '낭독 있다 할껀데. . .'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었다. 그때, 정말 긴장+긴장=초긴장상태였다.
게다가, 그 전에 토토였나? 리사였나? 누군가 영어로 된 어떤 것을 읽었었다. 몇 명이 읽었었는데,
다들 대단한 발음을 가지고있었다. 그 때문에 아마도 더 긴장햇던 것 같다. 하지만, 영어낭독은 하지않았다.
시간을 봐가면서 얼마남지않았음에 좋아하면서도 '끝에 시킬지도 몰라'하는 초조함도 있었다.
시작에 '영어'가 나와서인지 '인문학'은 점점 멀어져가고있었다. 하지만, 싫다거나 하고싶지않아는 아니었다.
'들을만하다'정도였다. '영어'와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나서는 '과제'의 부담감이 생겨났다.
블로그에 가서 다른 쥬니어들의 글을 보며 기죽다보니 시작은 했으나 끝을 보지못했다.
'생각'은 시작했는데 다른 쥬니어들의 글을 보니 내 '생각'이 너무 비참해졌다.
그레이스와 함께 '일과요리'팀 회의를 하는데 나만이 아니라 가인, 산, 이안, 예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뭔가 굉장한 위로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가짐을
고쳐먹었던 것 같다. 너무 '인문학'을 쉽게 생각하고 있지않냐는 질문에 굉장히 찔렸다.
한 통로를 살짝만 건들여줌으로써 전구의 불이 들어왔다.
'일과 요리'팀에서 발표하게 된 '음악다방'은 굉장히 쑥쓰럽고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아마도 그때부터 인문학이 즐거워지지않았나한다.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가장 뿌듯하다거나 즐거웠다거나 하는 '과제'를 뽑으라면 아마도 50년후의 나의 모습을 쓰는 것.
'노인'의 고독을 초점으로 적었던 '뿡'의 과제를 들으며 '아, 난 과제를 잘 못한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건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의 과제는 내 스스로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나의 초점은 발전한 50년 후였으니까. 상상에 상상을 덧붙이면서 기존의 '앨리스'를 투입시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느낌이 굉장히 두근두근거렸었다. '똥이야기'도 그렇고. 고메는 굉장히 '현실적'이었지만,
아니, 모두의 과제들은 '현실적'이었다. 나는 너무 앞서간걸까. 다른세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내 '과제'가 비참해지지는않았었다. '인문학'수업을 집중해서 들으면서
내가 눈에 띄게 바뀐 것은 '자신감'이었다. 예전의 '노디'의 흐물흐물함보다는 약간의 '여유로움'과
'자신감'이 생겼다. 아마 예전엔 카페'그래서' 의 '긴장감'도 안 풀렸을 수도 있고 여러모로 다른 것들도
작용했겠지만은, '인문학'을 통해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난 것만은 확실하다.
인문학은 강의가 늘면 늘수록 너무나도 재밌어졌다. 강의 시작 전부터 흘러나오는 음악,
해석과 함께 듣고 부르는 음악,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낭독.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을 비롯한 모든 음악들은 뭔가를 꿈틀꿈틀거리게 했다.
첫 강의였던가? 'Rhythm of the rain'은 "Singing in the rain'을 떠올리면서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었었다.
정말 좋은 노래들이 많았지만, 다 적지 못한 게 안타깝다. 내가 집중해서 듣지못한 강의들도
강의를 들으며 얻은 것들을 적지못한 것들도 안타깝다. 김용택시인의 '별하나'라던가,
박완서소설가의 '친절한 복희씨'라던가. '인문학'을 하면서 예전에 좋아했던 '시'들의 구절이
떠올라서 가끔 '그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좋지만은 않지만, 누군가가
떠올리면 '이러면 안돼'라는 생각이 더 좋지 않다고 했다. 생각나면 생각하고, 울고싶으면 울고,
보고싶으면 보면된다. 뭔가 다른 방향으로 흘려가려는 것 같다. 하고싶은 이야기 많은데.
'친절한 복희씨'를 들으면서 '나'를 돌이켜봤다. '할머니댁'에 제일 자주가는 '나'.
자주는 가지만, 자고가라는 말에 둘러대고는 이모네서 잔다. 의도치않게 할머니가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노인의 '고독'에 대해 강의를 들으며 우리 할머니도 그렇겠구나. 할머니가 이해되면서도 막상 닥치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은 어쩔수가 없다. 그래도 조금은 더 할머니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강의이지않았을까;
'물'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항상 알고 있었지만 실천은 못햇던 '물아껴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미나마타'에 동영상은 굉장히 무서워서 정말 못보겠더라. 일본의 공포영화같았다.
'일본영화'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얼마전에 알게 된 건데, '일본영화'는 '잔인한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게끔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그랬다. (녹차의 맛도!) 아아, 이 얘기는 왜 해버려서 '일본영화'로 들어가려는 걸까;
알고는 있지만 부딪히기가 무서워 피해가려던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되었다.
예를 들면, '어른'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거지?에 대해 꼬리를 물다가.
물론, 내가 아는 '어른'들은 상식적인 '어른'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어른'들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르는 어떤 '부분', '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놀라기도 하면서 상처받는다.
뭐 그런 정의를 내 스스로 내려버렸다. 안 좋은 거지만, 요새 들어 '상처받아버렸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 원인을 분석하다보니 아무래도 내 탓이 제일 크겠지만.
'인문학'은 어쩌면 '작은 것'으로 끝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김찬호 선생님'의 '진심'이 통했던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께 '인문학 강의 너무 좋아요'라던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아마 내 진심도 통했을 꺼라 믿는다.
강의가 몇번 안 남았다고 말해주는 세이렌의 말을 들으며 울적해졌다.
이번 골든벨 때의 토토에게 준 선물에 들어있는 김찬호 선생님의 글을 들으며 정말 울 뻔했다.
굉장히 감동적이면서 슬펐다. 항상 '마지막'은 '시원섭섭'이다. 이번 인문학은 '시원'하지가않다.
아무래도 내가 뒤늦게 열정적이었던 영향도 있겠지만. '슬프다'를 대체하는
어떤 '감정'이 필요한데 적절한 표현이 뭔지 모르겠다. 정성스레 쓸려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지
글도 뒤죽박죽에 정리도 안된다. 아아, 마지막이라니. 아직 친해지지못한 쥬니어들이 굉장히 굉장히 많은데….
모두가 다 친해질때까지- 모두모두모두가! 그때까지 인문학 계속할 수 없는 걸까; 서울투어?였던가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놀러간다니. 공항투어도 꼭 갔으면 좋겠고, 또 다른 투어도 갔으면 좋겠다.
투어로 인해 강의가 계속계속 길어졌으면. . 이야기하고 싶었던 무언가'가 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하고 아즈망가 속으로~. 아아- 에세이'조차 끝을 내기가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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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디, 몇차례 이야기 했던 것처럼 노디는 충분히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진심을 읽어내려는 노디의 노력이 인문학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노디 자신과 노디를 둘러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역시 노디는 지금 이 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지. 이제 시작이야. 이 글을 마치지 못하는 것은 마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지. 진심이 담긴 노디의 에세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