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평가서 - 왕양 (11/26)
굿바이 m25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라고 (이제는)말할 수 없어야 한다.
수 요일 밤, 잠들기 전은 좋았다. 매일 같이 나의 하자 시계는 10시부터 시작 되지만, 그 10시가 부담 없는 딱 하루 밤이었다. 블로그에 올려야 하는 과제는 어째 반도 채우지 못했지만, 홧김에 인문학을 안 들어간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인문학 시간에 들어가는 것은 좋았다. 최소 주 4일은 곤두세워져 있는 나에게, 그 하루 오전은 조금이나마 편했기 때문이다.
인문학 수업의 룰이 좀 더 빡 셌더라면(결석 내지는 숙제 미제출 패널티 라던지) 그렇게 까지는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학기의 프로젝트 중, 가장 덜 시달리게 하고 있는 수업 이어서였을까. 그 날의 역사에서는 25-34세 샐러리맨을 위한 무가지 M25가 가판대에 꽂혀 있는 날이었다. 뜯어보면 영양가 있을 비비드한 코팅종이를 아무 생각 없이 뽑아들고 999로 향했다. 목요일만큼은 허용되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목요일 오전은 나를 뉘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디에? 접이식 의자에?
사실 999에 있는 접이식 의자는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 등받이와 허리를 직각삼각형 모형으로 만들더라도 조금도 편하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의 인체를 떠올리며 이런 의자를 생산했는지 조금도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의자에 앉고 싶냐...’ 라고 물으면 할 말은 없었다. 하자에 내가 편한 의자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맨 앞자리에서 들었다. 가능하면 앞하고도 중간에 앉고 싶었다. 뒤에 앉으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앞에 앉으면 좀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문학 수업의 전개도는 죽돌들이 반원으로 앉아 있으면, 그 뒤를 병풍마냥 서 있는 열린 작업장의 판돌들이 보였다. 많은 이들이 도모하고, 가담하고 있다고 생각 했다. 계략 아닌 계획이었다. 목요일 오전은 어떠한 ‘공기’가 떠다니고 있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괜찮은 것도 별로인 것도 아니었다.
그룹별 과제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주제를 잡기 시작할 때부터 개인적 이유도 담으며 우겼다(이유라 하면 ‘하자가 아닌 곳에 가고 싶다’ 정도). 화장실과 경합을 벌인 끝에 여의도로 떠났다. 내가 있는 그룹은 특성상 ‘웬만하면 뭐든지 땀을 낸다’.
1-2차 조사로 나누어 강을 뜯어보기로 했다. 다들 지갑 사정이 녹록치 않음을 서로가 알기에 강까지 걸었다. 조금은 소풍 기분 내보고 싶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낮을 지상에서 보내며 길찾기 시절 걸어서 바다까지 예행연습 때를 떠올렸다. 은행이 주렁주렁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국회의사당과 방송국과 빌딩을 봤다.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었던 것을 평소에는 잘 몰랐다. 나로썬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러다 강에 도착했다.
강은 어려웠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려고 했고, 인터뷰를 했지만 우리가 ‘들으려 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다들 제각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원하는 대답을 얻으려면, 그러한 질문을 해야 했다. 그런 터득 없이 시작된 인터뷰와 첫 조사는 성과로 치면 없이 끝났다.
첫 회의 때 한강이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소비와 배설’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한강은 누릴 것이 많은 대신, 촘촘한 소비망을 구축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포함된 ‘소비’를 맡은 조가 인터뷰 한 사람(매점 주인, 놀러온 연인, 인형가게 주인, 커피숍 직원, 해적선 선장 등)들은 한강에 많은 소비가 오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싸다고 생각하면, 소비하지 않고 있었다. 자본을 모아서 소비를 촉진하고 있는 곳도 장사가 썩 잘 되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강은 무지 컸다.
그러다 주제의 난이도를 바꾸어,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강’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시민들을 만나고, 질문을 하고, 그저 답을 들으면 됐다. 그 평범한 연속을 하고 있자니 코가 시렸다. 다들 추워했다. 그리고 무진장 걸었다. 걷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저 힘들었다. 공연 연습이 그나마 쉽게 느껴졌다.
게다가 길찾기 영상 편집 강의 시간 때 졸았는지 저쨌는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 통에 많이 걸어 다닌 사람들이 영상도 만들었다. 밤 많이 새고 억울했을 것이다. 사실, ‘난 몰라’하면 되는 문제가 아닌데.
어쨌든 영상은 만들어졌고, 대체로 돈과 사람 모이는 곳으로 바꾼다는 것을 좋은 점으로 세우며 과제를 발표했다.
아직도 ‘어렵다’는 생각 뿐이다.
‘앎 ’은 참 어렵다. 무엇을 함구하여 알아내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앎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도 전에 막혀버리는 부분이 있다. 사실 그게 뭔지는 잘 모른다. 나에게서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천천히 삶을 밟는 것에 있었다. 돌아보며 삶을 사는 것.
‘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침을 시작하는 시간을 조금 앞으로 당기고, 하루를 마치는 시간을 뒤로 조금 당겨서 정리하면 되는 거였다. 정리의 방식은 무엇이던 가능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방을 치우거나, 몸을 씻거나, 사진을 정리하던가. 악기에 부딪쳐 멍으로 꽃핀 무릎에 물파스를 바르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어쨌든 정리의 시간이 온라인에 매어져 있지만 않으면 됐다.
하지만 번번이 나는 그 약속들을 어기며, 오프라인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그렇게 열심히 했던 미투데이조차 오프라인의 연장선이었음을 이제나마 생각한다).
막히고 있다. 활자 외의 다른 표현 방식을 습득하고 있는 나에게는 지금이 어렵다. 다른 표현은 여전히 어렵고, 그나마 최상의 수단이었던 글마저도 메아리 된다.
약간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무시무시하도록 하찮은 나에게 그 것은 좋은 선물이 되었다.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울리는 글은 못 쓰지만 웃기는 글은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했다. 지금은 그 것이 무엇. 나 하나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하자가 '인문학'에 대해왔던 가장 큰 태도는, '모든 작업의 기본' 임을 말은 안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년의 하자 인문학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나의 태도도 고쳐질 수도 있다. 사실 잘 모른다.
집 컴퓨터는 블로그의 해상도를 깡그리 무시한다. 촘촘한 노란색 노트패드 글들이 갈겨져 보인다. 키보드로 갈겨 쓴 내 글은 참 못났다. 지금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언어가 여물지 않는다. 이 나이 때는 역시 당연한 것인가? 내년에 다시 보면 더 창피할 수도 있다. 내년에 뭐하고 있을까, 그리고 스무 살에는. 똑똑한 사람이 쓴 인생 매뉴얼들은 참 많다. 정 생각하기 싫으면 그거 읽고 따라 해도 된다. 그러면 망하지나 않겠다. 그치만 아직까지 안 보고 참고 있는 이유는, 돌파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겨내거나 방법을 찾던지 좌절하던지 내 방법을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방법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좀 꼬였다.
이제 목요일이 끝나간다. 목요일이 다시 올 수 있고, 이제 안 올수도 있다. 이제는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M25를 뽑을지도 모르겠다.
잉 글씨체가 중간에 안바뀌어혀 집 컴퓨터가 바보임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라고 (이제는)말할 수 없어야 한다.
수 요일 밤, 잠들기 전은 좋았다. 매일 같이 나의 하자 시계는 10시부터 시작 되지만, 그 10시가 부담 없는 딱 하루 밤이었다. 블로그에 올려야 하는 과제는 어째 반도 채우지 못했지만, 홧김에 인문학을 안 들어간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인문학 시간에 들어가는 것은 좋았다. 최소 주 4일은 곤두세워져 있는 나에게, 그 하루 오전은 조금이나마 편했기 때문이다.
인문학 수업의 룰이 좀 더 빡 셌더라면(결석 내지는 숙제 미제출 패널티 라던지) 그렇게 까지는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학기의 프로젝트 중, 가장 덜 시달리게 하고 있는 수업 이어서였을까. 그 날의 역사에서는 25-34세 샐러리맨을 위한 무가지 M25가 가판대에 꽂혀 있는 날이었다. 뜯어보면 영양가 있을 비비드한 코팅종이를 아무 생각 없이 뽑아들고 999로 향했다. 목요일만큼은 허용되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목요일 오전은 나를 뉘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디에? 접이식 의자에?
사실 999에 있는 접이식 의자는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 등받이와 허리를 직각삼각형 모형으로 만들더라도 조금도 편하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의 인체를 떠올리며 이런 의자를 생산했는지 조금도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의자에 앉고 싶냐...’ 라고 물으면 할 말은 없었다. 하자에 내가 편한 의자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맨 앞자리에서 들었다. 가능하면 앞하고도 중간에 앉고 싶었다. 뒤에 앉으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앞에 앉으면 좀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문학 수업의 전개도는 죽돌들이 반원으로 앉아 있으면, 그 뒤를 병풍마냥 서 있는 열린 작업장의 판돌들이 보였다. 많은 이들이 도모하고, 가담하고 있다고 생각 했다. 계략 아닌 계획이었다. 목요일 오전은 어떠한 ‘공기’가 떠다니고 있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괜찮은 것도 별로인 것도 아니었다.
그룹별 과제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주제를 잡기 시작할 때부터 개인적 이유도 담으며 우겼다(이유라 하면 ‘하자가 아닌 곳에 가고 싶다’ 정도). 화장실과 경합을 벌인 끝에 여의도로 떠났다. 내가 있는 그룹은 특성상 ‘웬만하면 뭐든지 땀을 낸다’.
1-2차 조사로 나누어 강을 뜯어보기로 했다. 다들 지갑 사정이 녹록치 않음을 서로가 알기에 강까지 걸었다. 조금은 소풍 기분 내보고 싶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낮을 지상에서 보내며 길찾기 시절 걸어서 바다까지 예행연습 때를 떠올렸다. 은행이 주렁주렁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국회의사당과 방송국과 빌딩을 봤다.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었던 것을 평소에는 잘 몰랐다. 나로썬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러다 강에 도착했다.
강은 어려웠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려고 했고, 인터뷰를 했지만 우리가 ‘들으려 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다들 제각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원하는 대답을 얻으려면, 그러한 질문을 해야 했다. 그런 터득 없이 시작된 인터뷰와 첫 조사는 성과로 치면 없이 끝났다.
첫 회의 때 한강이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소비와 배설’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한강은 누릴 것이 많은 대신, 촘촘한 소비망을 구축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포함된 ‘소비’를 맡은 조가 인터뷰 한 사람(매점 주인, 놀러온 연인, 인형가게 주인, 커피숍 직원, 해적선 선장 등)들은 한강에 많은 소비가 오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싸다고 생각하면, 소비하지 않고 있었다. 자본을 모아서 소비를 촉진하고 있는 곳도 장사가 썩 잘 되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강은 무지 컸다.
그러다 주제의 난이도를 바꾸어,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강’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시민들을 만나고, 질문을 하고, 그저 답을 들으면 됐다. 그 평범한 연속을 하고 있자니 코가 시렸다. 다들 추워했다. 그리고 무진장 걸었다. 걷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저 힘들었다. 공연 연습이 그나마 쉽게 느껴졌다.
게다가 길찾기 영상 편집 강의 시간 때 졸았는지 저쨌는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 통에 많이 걸어 다닌 사람들이 영상도 만들었다. 밤 많이 새고 억울했을 것이다. 사실, ‘난 몰라’하면 되는 문제가 아닌데.
어쨌든 영상은 만들어졌고, 대체로 돈과 사람 모이는 곳으로 바꾼다는 것을 좋은 점으로 세우며 과제를 발표했다.
아직도 ‘어렵다’는 생각 뿐이다.
‘앎 ’은 참 어렵다. 무엇을 함구하여 알아내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앎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도 전에 막혀버리는 부분이 있다. 사실 그게 뭔지는 잘 모른다. 나에게서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천천히 삶을 밟는 것에 있었다. 돌아보며 삶을 사는 것.
‘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침을 시작하는 시간을 조금 앞으로 당기고, 하루를 마치는 시간을 뒤로 조금 당겨서 정리하면 되는 거였다. 정리의 방식은 무엇이던 가능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방을 치우거나, 몸을 씻거나, 사진을 정리하던가. 악기에 부딪쳐 멍으로 꽃핀 무릎에 물파스를 바르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어쨌든 정리의 시간이 온라인에 매어져 있지만 않으면 됐다.
하지만 번번이 나는 그 약속들을 어기며, 오프라인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그렇게 열심히 했던 미투데이조차 오프라인의 연장선이었음을 이제나마 생각한다).
막히고 있다. 활자 외의 다른 표현 방식을 습득하고 있는 나에게는 지금이 어렵다. 다른 표현은 여전히 어렵고, 그나마 최상의 수단이었던 글마저도 메아리 된다.
약간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무시무시하도록 하찮은 나에게 그 것은 좋은 선물이 되었다.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울리는 글은 못 쓰지만 웃기는 글은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했다. 지금은 그 것이 무엇. 나 하나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하자가 '인문학'에 대해왔던 가장 큰 태도는, '모든 작업의 기본' 임을 말은 안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년의 하자 인문학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나의 태도도 고쳐질 수도 있다. 사실 잘 모른다.
집 컴퓨터는 블로그의 해상도를 깡그리 무시한다. 촘촘한 노란색 노트패드 글들이 갈겨져 보인다. 키보드로 갈겨 쓴 내 글은 참 못났다. 지금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언어가 여물지 않는다. 이 나이 때는 역시 당연한 것인가? 내년에 다시 보면 더 창피할 수도 있다. 내년에 뭐하고 있을까, 그리고 스무 살에는. 똑똑한 사람이 쓴 인생 매뉴얼들은 참 많다. 정 생각하기 싫으면 그거 읽고 따라 해도 된다. 그러면 망하지나 않겠다. 그치만 아직까지 안 보고 참고 있는 이유는, 돌파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겨내거나 방법을 찾던지 좌절하던지 내 방법을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방법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좀 꼬였다.
이제 목요일이 끝나간다. 목요일이 다시 올 수 있고, 이제 안 올수도 있다. 이제는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M25를 뽑을지도 모르겠다.
잉 글씨체가 중간에 안바뀌어혀 집 컴퓨터가 바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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