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파일] 1강을 위한 자료: 牧笛
참고)
![]() |
최공재의 시네마 까먹는 소리 | ![]() |
|
수묵 애니메이션 - 피리 부는 목동 덴마크 국제 아동 영화제 금상, 안데르센상 수상작 하청업체 수준의 한국 애니메이션 자성해야 |
||||
|
||||
처음 이 화면을 책갈피로 접했을 때는 이게 그냥 한 폭의 그림인 줄 알았지만, 이게 그림이 아닌 애니메이션이었음을 안 것은 그로부터 15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3년도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도대체 이 영화가 그 당시에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궁금함에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고 기어이 일본에서 출시된 이 영화와 이 영화의 제작과정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구하게 되었고, 거기서 접하게 된 ‘올챙이는 개구리 새끼’와 제목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수묵 애니메이션들을 접하게 되면서 놀라움을 떠나 감탄을 하게 된다. 불교의 ‘십우도(十牛圖)’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는 이 영화는 종교적 색체를 배제한다 하더라도 수묵으로 그려진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20분간 이 영화로의 여행을 통해서 자연향취 그윽한 휴식으로 영혼이 맑게 정제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수묵화가이기도 한 ‘태 웨이’ 감독은 본인이 직접 그린 이 짧은 영화를 통해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현대 도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대사도 없이 수묵으로 그린 그림 위에 소년은 피리를 불고 그 피리소리와 함께 소와의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멋드러진 것은 이 영화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소년이 나무 위에서 꾸는 꿈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 속에서 소년이 소에게 보여주는 각각의 감정 표현을 통해 소년이 진정으로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정성을 아주 동양적인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매우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화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어린 시절, 내가 꿈꾸었던 그 무엇에 대한 향수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다. 우리가, 내가 쉽게 버리고 잊어버렸던 일상과 추억 속에 안주하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희망이 소년의 피리와 함께 소의 생동하는 모습 속에 살아남을 느끼면서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잠시나마 동심으로의 회귀를 꿈꾸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이 영화를 접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화영화라고 하면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선입견을 가진 관객 토양의 척박한 환경도 그렇지만, 세계 제일의 애니메이터들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헐리웃과 일본의 하청업체로 밖에 활동하지 못하는 한국 애니메이션판도 분명 자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하드웨어는 넘쳐 나는데 소프트웨어가 없는 상황이 결국 한국 만화영화는 재미없고, 유치하다고 인식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고, 국내 극장은 일본이나 헐리웃 애니메이션에 자리를 내주는 꼴이 되어 버린다. 헐리웃의 대자본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식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이 발전하고 헐리웃과 맞짱 뜨고 있을 때 한국은 그들의 하청업체로서 그림만 만들어주는 공장 역할만 했다. 지금이라도 한국적 스타일을 찾아 세계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힘을 보여주겠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결과물로 볼 때 '아직'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질 않으니 아쉬울 뿐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한국적이고 우리만의 화면과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좀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훌륭한 하드웨어 인재들을 보유한 한국 만화영화 업계에 분명 국가와 자본들도 지원을 해줘야 하리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만화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선입견을 가진 관객들이 그 선입견을 하루 빨리 깨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삼위일체가 된다면 우리는 근시일 내에 헐리웃이나 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우리만의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세상을 호령할 것이라고 믿는다. 실사영화보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의 문화 보급력이 활씬 더 막강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그건 희망이나, 기대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숙제다. 최공재 (독립영화감독) |






Leave a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