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파일] 5월 8일 - 9강 공자와 장자: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강의: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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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8. 청소년을 위한 하자인문학2, <니하우 베이징> 특강

공자와 장자―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 는 잔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기쁜 낯으로 그 약을 마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슬픔을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만, 이제 그가 그 약을 다 들이키는 것을 보고는 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어요.…저보다 먼저 크리톤은 울음을 억제할 수 없으니까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서더군요. 아폴로도오로스는 벌써부터 줄곧 울고 있었는데, 이때에는 큰 소리로 흐느껴 울어 우리들 모두의 가슴을 메어지게 했습니다. 홀로 소크라테스만이 여전히 조용했어요.
“그게 무슨 꼴인가”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네. 내가 아낙네들을 내보낸 것은 그들이 이런 창피스런 꼴을 보일까 봐 그런 거야. 사람은 모름지기 조용히 죽어야 한다고 나는 들어왔어. 조용히 하고 꿋꿋하게 행동하게.”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걷더니 한참만에 다리가 무겁다고 말하고는 반듯이 드러눕더군요. 이건 그에게 약을 준 사람이 그렇게 하라 한 것이지요. 소크라테스가 누우니까 그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다리와 발을 살펴보더군요. 그리고 한참 있다가 발을 세게 누르면서 감각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소크라테스가 “없다”고 하니까, 그 다음엔 다리를 눌러 보고는 우리에게 몸이 차가워지고 굳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다시 우리에게 말하기를, “독이 심장에까지 미치면 마지막입니다”라고 하더군요. 하반신이 거의 다 차가워진 때 그 분은 얼굴에 덮었던 것을 벗기고―얼굴을 덮었더랬으니까요―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최후의 말이었습니다. “오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게.” (플라톤,  [파이돈])

어느 시대에서든 최고의 현자들은 삶에 대해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삶은 별 가치가 없다고 …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든 사람들은 그들의 입에서 똑같은 소리를 듣는다―회의와 우울 가득한, 삶에 완전히 지쳐버리고 삶에 대한 저항이 가득한 소리를. 심지어는 소크라테스마저도 죽으면서 말했다 : “삶―이것은 오랫동안 병들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네: 나는 구원자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소크라테스조차도 삶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자신에게 나직이 말했다: “오로지 죽음만이 여기서 의사이고……소크라테스 자신은 오랫동안 병들어 있었을 뿐이다.” (니체,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삶의 비극성

[사람은] 일단 온갖 뼈와 감각기관들과 내장기관들을 갖춘 완성된 신체를 부여받으면 곧장 죽지는 않는다 해도 소진되기를 기다린다. 다른 사물들과 서로 베고 쓰러뜨리고 하면서 소진시키는 것이 마치 말을 내달리는 것과 같아서 멈추게 할 수가 없다.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죽을 때까지 일하고 또 일하지만 성공을 보지 못하고, 고달플 정도로 피로하게 일하지만 돌아갈 곳을 모르니, 애처롭지 않다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우리의 신체가 죽어서 변화하면 마음도 역시 그것과 함께 그러하거늘. 크게 애처롭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삶이란 정말로 이와 같이 암담한 것인가? 아니면 나만 홀로 암담하고, 다른 사람들은 암담하지 않다는 것인가?【一受其成形, 不忘以待盡. 與物相刃相靡, 其行盡如馳, 而莫之能止, 不亦悲乎! 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 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 可不哀邪! 人謂之不死, 奚益! 其形化, 其心與之然, 可不謂大哀乎! 人之生也, 固若是芒乎? 其我獨芒, 而人亦有不芒者乎?】([장자] "제물론")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은 흰 말이 벽의 틈새로 언뜻 지나가는 것처럼 순식간이다. 물이 솟구치듯 나타났다가 물이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다. 이미 변화하여 태어났고, 또 변화하여 죽는데, 살아있는 것들은 그것을 슬퍼하고 인류는 그것을 비애로 여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郤, 忽然而已. 注然勃然, 莫不出焉; 油然漻然, 莫不入焉. 已化而生, 又化而死, 生物哀之, 人類悲之.】([장자] "지북유")


인간다움의 완성, 자기 완성으로서의 삶―공자의 삶의 태도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질문하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가 있겠는가!” 계로가 말했다. “죽음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요!”【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논어] "선진")

증자가 말했다. “선비들은 뜻이 넓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주어진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간다움[仁]을 자기의 임무로 삼으니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야 끝나니, 어찌 갈 길이 멀지 않겠는가!”【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논어] "태백")

공자가 말했다. “의지가 강한 선비와 인간다운 사람은 살기를 구하여 인간다움을 해치는 경우는 없어도 자신을 죽여서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경우는 있다.”【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논어] "위령공")
공자가 말했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子曰, “朝聞道, 夕死可矣.】([논어]  "이인")

공자가 말했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기를 위하였는데,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위한다.”【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논어] "헌문")

자공이 말했다.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간답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찌 인간다움[仁]에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스럽다[聖] 할 것이다. 요임금도 순임금도 그때문에 애태웠을 것이다. 무릇 인간다움이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세우고, 자기가 이루고 싶으면 남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자기를 미루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인간다움을 행하는 방법이라고 할 만하다.【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논어] "옹야")
공자가 병이 나자 자공이 뵙기를 청하였다. 공자는 마침 지팡이에 의지하여 문 앞을 거닐고 있다가 물었다. “사(賜)야,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 그리고 탄식하며 노래를 불렀다. “태산이 무너진다 말이더냐! 큰 기둥이 부러진다 말이더냐! 철인이 죽어간다 말이더냐!”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자공에게 말했다. “세상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아무도 나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그 후 일주일만에 공자는 세상을 떠났다.【孔子病, 子貢請見. 孔子方負杖逍遙於門, 曰, “賜, 汝來何其晩也?” 孔子因歎, 歌曰, “太山壞乎! 梁柱摧乎! 哲人萎乎!” 因以涕下. 謂子貢曰, “天下無道久矣, 莫能宗予.…” 後七日卒.】(사마천, [사기] "공자세가")


순간의 긍정―장자의 삶의 태도

자사와 자여와 자려와 자래 네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무(無)를 머리로 삼고 삶을 등뼈로 삼고 죽음을 꼬리로 삼을 수 있는가? 누가 삶과 죽음과 존재와 사라짐이 한 몸임을 아는가? 나는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 네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빙긋이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자 마침내 서로 친구가 되었다.……
얼마 있다 자래에게 병이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곧 죽을 것 같았다. 아내와 자식들이 그를 빙 둘러싸고 흐느껴 울었다. 자려가 문병을 가서 그 가족들에게 말했다. “쉬이! 물러나시오! 변화에 놀라지 마시오.”
그는 문에 기대어서 자래에게 말했다. “위대하구나, 조화(造化)여! 또 장차 자네를 무엇으로 만들고, 장차 자네를 어디로 데려가려나? 자네를 쥐의 간으로 만들려나? 자네를 벌레의 팔뚝으로 만들려나?”
자래가 말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동서남북 어디든 가라고 명령하면 자식들은 그것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음양(陰陽)이 인간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정도가 아니다. 저 조화(造化)가 나를 죽음에 가까이 이르게 했는데도 내가 그것을 듣지 않으면, 나만 버릇없는 자가 될 뿐이지 저 음양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지금 위대한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녹여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 쇠붙이가 뛰어오르며 ‘나는 반드시 막야와 같은 명검이 될테야’라고 한다면 위대한 대장장이는 그것을 불길한 쇠붙이라고 여길 것이다. 지금 우연히 사람의 형체를 취했다고 해서 ‘사람이 될거야, 사람이 될거야’라고 한다면, 저 조화자(造化者)는 그를 불길한 사람이라 여길 것이다. 하늘과 땅을 큰 용광로로 여기고 조화(造化)를 위대한 대장장이로 여긴다면 어디를 가도 안 될 것이 있겠는가?”【子祀․子輿․子犁․子來 四人相與語曰, “孰能以無爲首, 以生爲脊, 以死爲尻, 孰知死生存亡之一體者, 吾與之友矣.” 四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俄而子來有病, 喘喘然將死, 其妻子環而泣之. 子犂往問之, 曰: “叱! 避! 無怛化.” 倚其戶與之語曰, “偉哉造化! 又將奚以汝爲, 將奚以汝適? 以汝爲鼠肝乎? 以汝爲蟲臂乎?” 子來曰, “父母於子, 東西南北, 唯命之從. 陰陽於人, 不翅於父母; 彼近吾死而我不聽, 我則悍矣, 彼何罪焉!…今之大冶鑄金, 金踊躍曰, ‘我且必爲鏌鎁’, 大冶必以爲不祥之金. 今一犯人之形, 而曰, ‘人耳, 人耳.’ 夫造化者必以爲不祥之人. 今一以天地爲大鑪, 以造化爲大冶, 惡乎往而不可哉!“ 成然寐, 蘧然覺.”】([장자], "대종사")

지극한 사람은 자기가 없고 신비로운 사람은 공이 없고 성스러운 사람은 이름이 없다.【至人无己, 神人无功, 聖人无名.】([장자]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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