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2) 왕양(촌닭들), 21세기 서유견문 (서울遊見聞)
서울에 딴스홀은 허했지만 그래도
옥분아, 나는 지금 몹시 춥고 빠른 전차 안에서 무한한 혼란을 느끼고 있어. 여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그저 깜깜한 땅 속이란다. 결국 우리가 얻어낸 666 딴스홀에서 차차차를 출 때 보다 더한 흔들림을 느끼고 있지. 이곳은 남녀 내외하지 않고 모두 섞어 아무 곳에나 앉는단다. 수-트를 입은 대부분의 남자들은 망측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지 뭐니. 대부분 책처럼 생긴 컬러로 된 일보를 읽거나, 팔뚝보다 얇은 철 덩어리를 붙잡고 있단다. 가끔은 그 철 덩어리에 대고 혼자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올챙이처럼 생긴 전선줄을 귓구멍에 쿡 박은 채 자는지 안 자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동네에서는 안계시면 오라이, 하는 안내양도 있었는데 말이야. 전차 천장에 살고 있는 이름 모를 처녀가 한국말이랑, 꼬부랑 영어를 쓰고 있지. 근데 언제 어디서 타도, 똑같은 처녀가 말을 한다는 사실이야. 영어로 안내를 해줘서 그런지, 이 전차의 표 값은 무척이나 비싸다. 딴스홀을 2만 번이나 왔다 갔다 해도 남을 정도인, 1천원 이란다. 1천원만 있으면 최신식 의원을 차릴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어차피 내 돈을 내고 탄 것이 아니라 다행이지. 우리의 전차는 문 앞에서 표를 받는 사람이 있지만, 여기는 표를 먹는 기계가 있지 뭐니. 기계에 작고 빳빳한 누런 종이를 넣으면, 막대기가 움직여서 전차를 탈 수 있게 해. 전차가 서는 역도 어찌나 많은지.. 전차 지도를 보고 조선 팔도의 지도 인 줄로만 알았어.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시간에도, 참 많은 전차들이 굴속을 기어 다닐 거야. 이 전차는 어떻게 생긴 줄 아니? 각지고 무척 긴데, 이것을 지네와 같은 벌레에 비유 해도 될까 모르겠어.
그래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물건 파는 상인이나, 구걸 하는 맹인들이 들어오기도 해. 나는 일보도 없고 철 덩어리, 올챙이 줄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지. 얼른 이 굴을 나가서 궐련을 쪽쪽 빨고 싶구나.
우리의 666 딴스홀을 옥분이 너만큼 자주 들락거리게 된 나는, 서울의 어느 곳을 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당연히<'666만큼 건전한 딴스홀>을 가고 싶다고 대답했지. 요즘 조선의 뒷골목에서 한창 성황 중인 아가씨들을 파는 술집 같은 곳은 절대 싫어요! 나는 즐겁게 춤추는 곳을 원해요 라고 말했더니, 이 전차를 타고 <신촌> 다음 역인, <홍대 입구>라는 역에 내리라고 하더라. 그 곳은 홍익 학당이 있는 신성한 곳 일텐데.. 나 같은 춤바람 난 처녀가 가도 될런지 모르겠구나. 전차의 문과 함께 커다란 유리문이 열렸다. 어쩜 서울의 문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잘 아는지. 궁에 있는 문지기들 보다 똑똑하다.
기계에 표를 넣고 긴 계단을 올라 드디어 땅 위로 올라왔어. 여기는 학당이 아닌 가봐. 하긴 학당에서 딴스를 출 리가 없으니까.. 전차 안에서 보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철 덩어리에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지도대로 딴스홀에 도착하면 되는데.. 이 도시는 참 신기하다. 하늘이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더 밝아지고 있어. 그리고 사람의 수는 더욱 많아 져서, 이것이 밤인지 낮인지 전혀 알 수가 없지.
오늘 내가 가야 할 딴스홀의 이름을 전혀 알 수 없어서,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보여 주며 길을 묻는 수밖에. 고작 두 바퀴에 몸을 싣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물어볼 수가 없어. 다행이도 오징어 말린 것을 팔고 있는 머리를 볶은 자에게 물어. 그 남자는 어설프게 볶은 내 머리를 보며 말을 멈추더니, 친절하게도 딴스홀 앞까지 데려다 주었어. 딴스홀 앞은 정말 교양이 없어. 술병에 입을 대고 마시질 않나.. 다행히도 이곳의 여자들은 짧은 옷을 입고 거리낌 없이 궐련을 태우고 있네. 서울에서 처녀가 궐련을 태운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너무 힘든 일이야. 나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술병에 입을 대고 마셔 본다. 666 딴스홀의 빌어먹을 약조 한가지인 '홀 안에서 음주하지 아니 한다'를 동의 해버리고 무척 후회 중이었지. 딴스홀의 입장권은 차표의 열배에 달하는구나. 하지만 앞으로 이럴 기회도 없겠지. 이런 시절이 온다고 해도, 나는 이미 아주 늙어버렸거나 땅 속에 묻혀 있을거야. 입장권을 판매한 자는 옷감이 많이 드는 옷을 입고, 바가지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있어. 볶은 머리와 흰색 리본 블라우스, 배꼽 위까지 끌어 입은 호박바지를 입은 나를 보며, 그 옷감은 나에게 '빈티지 하다'라고 했어. 옥분이는 '빈티지'라는 말이 무슨 말인 줄 아니?
내가 채 말 뜻을 묻기도 전에 옷감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 인원에 말려들어 갔어. 딴스홀은 어둡고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아. 사교댄스도 아닌 이상한 박자에 남녀 할 것 없이 서로의 몸을 부대끼는 구나. 그 광경을 보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다. 비록 그들과 다른 옷을 입었지만 이런 딴스는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에, 나 역시 부대끼는 딴스를 열심히 춘다. 옥분이 네가 봤다면 나에게 마구 핀잔을 주면서도 무척 부러워 할 것 같아. 이 컴컴한 곳에서도 빛이 나는 철을 사람들이 들고 있어. 물으니 사진을 찍는 도구라고 하더구나. 우리 동네에도 사진관이 얼마 전에 생겼는데.. 저 철로는 사진을 찍고 곧바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해.
마음껏 부대끼는 딴스를 추고, 보리 맛이 나는 씁쓸한 술을 한창 마시고, 블라우스가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딴스를 추었어. 제법 하늘이 밝아져서야 땅 위로 나왔을 때, 한 남자가 내 팔목을 잡지 뭐니. 나는 블라우스의 리본을 고쳐 매며 뒤를 돌아 봤어. 그러자 그 자의 답,
'핸드폰 번호 좀 알려 줘요' ..
무슨 번호를 알려달라는 걸까? 여기서 '어떤 번호요?'라고 물으면 가뜩이나 구식 차림 일 내가 어떻게 보이겠니. 하지만 그 남자는 666에 자주 드나드는 소위 불량배들과는 격이 다른 사람이었어. 굉장히 부피가 있지만, 귀금속을 몸에 많이 걸치고 있었지. 그리고 딴스를 무척 잘 추는 듯해 보였어. 구식으로 망신당하느니 아무 숫자라도 말한 뒤 도망 쳐야겠다고 생각했지. 666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뒤, 블라우스의 리본이 풀릴 만치 빠르게 전차 역으로 뛰어갔어. 다시 하나 둘씩 불을 켜고 있는 이 빠른 도시를 지나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구나.
지금 집인데,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저녁상을 물린 후 옷감을 많이 쓴 아버지 옷과, 할머니의 결혼반지를 끼고 666으로 갈거야. 부대끼는 딴스는 옥분이 너하고만 출 수 있겠다.
그럼 이따 보아.
(071003, 왕양, keepgoing.158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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