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2) 나캉(캐치스코프), 21세기 서유견문 (서울遊見聞)
30년대의 30대 남자 룸펜, 서울의 노숙자 되다.
아이쿠.
눈을 뜨니 왠 젊은 처자들의 맨다리가 눈앞에 휘휘 오가는 구나. 이게 꿈인지 생신지. 저 여인네들은 젓가락 같은 신발 뒷 굽으로 잘도 걸어다니는구나. 그건 그렇고 분명 동무들과 동냥질한 돈으로 오랫만에 거나하게 술 한잔 걸치고 경성역에서 잠든게 어제 일인듯 싶은데 이 번쩍거리는 곳은 어딘기야. 서울역? 저기 종이포대 덮고 누워있는 놈팽이들 중에 내 동무가 한명은 있을 성 싶은데 얼굴 좀 보자니까 다들 왜 성을 내는지. 됐다.
슬슬 허기지고 한가하려니까 누워있던 한 녀석이 저기로 가면 사람들이 돈을 준다고 하기에 옳쿠나 따라 가기로 한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 서니 계단 앞에 사람들 참 나란히도 오르내리는구나. 어이쿠 이놈의 계단은 저대로 움직여 내리는 것이 넘어질 뻔 봤구만. 편하기는 하다만 자기가 알아서 내려가 주겠다고 말을 해야 되는거 아닌가. 안그래도 요즘 경성에 희안한 문물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마는 요놈 참 신기하네.
여하튼 요 막대기가 막고있는 통로를 지나 동냥질 하러 가자는데 어째서 다들 잘 넘어 드는 이 막대기를 나는 여적 못 밀고 헤매는 건지. 저기 방금 동무된 사내가 아래로 넘으라고 귓뜸을 해주어 나도 겨우 넘어 들었다. 이 컴컴한 지하로 철마가 다니기도 하는 구나. 창을 들여다보니 풍경은 커녕 시커먼 것이 어지러워 억지로 안 치어다 보려니 또 이 흔들거리는 느낌이 여전히 어지러웁다. 사람이 참 많기도 허구나 다들 어디로 가는지. 요상하게 빽빽이 마주보고 앉아 하나씩 작은 물체를 들고 만지고 구경하느라 바쁘다. 알록달록 그림 같은 것들이 보여지기도 하는가 본데 저것이 말로만 듣던 활동사진이려나 싶구만. 귀에다 줄을 달고 잠들거나 저 작은 무엇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들 참 한가하면서도 지쳐 보이는 외로된 사업에 골몰중인 것이 가운데 사람 없는 틈을 걸으며 동무녀석이 조용히도 “도와 주세요” 하며 저만치를 가봤자 아무도 치어다 보지를 않는구나. 그렇게 해서 돈 10전이나 받겠나 싶어 말똥말똥 나를 구경하며 웃고 있는 아가씨한테 나도 웃어주며 “한푼 줍쇼” 해본다. 처음 보는 은빛 엽전 하나를 쥐어주는데 500이라고 써있다. 뒷면엔 한글로 오백원 써있는데 이것이 그럼 밥상으로 한끼 사먹을 일원이 열개모인 백원의 다섯 값어치 하는 오백원 이라는 말인지 멍 하고 있으려니까 그 아가씨 오백원 밖에 없어서 미안하단다. 아니지. 그러니까 이 오백원이 정말 그 오백원이라는 말이지. 그런데 어째 요런 동전모양새를 하고 있는가.
은화인가 싶어 곰곰이 쳐다보고 궁리하고 있으려니까 어느 술 취한 녀석이 어째 통로를 막고 있냐며 나를 밀친다. 딱 봐도 나보다 어려 보여 아주 혼쭐을 내주어야 겠다 싶어 어린놈이 어디 서른 먹은 어른을 밀치냐고 고함쳐 주었더니, 이놈 피식 웃으며 자기는 곧 마흔이란다. 고향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마흔 여섯으로 장수하며 이장을 맡고 계시는데 저 젊은 녀석이 무슨 곧 마흔 이라는 건지. 너 이놈 딱 봐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어디서 거짓말이냐 하였더니 배를 내밀며 민증을 까 보란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까기는 무얼 까냐” 하였더니 다짜고짜 신분증을 내놓아 보라는 것이다.
이 녀석이 취했어도 말쑥한 양장을 빼입고 배를 내미는 꼴을 보아하니 자기는 양반의 자식이다 하는 모양인데, 아무리 그렇다손 쳐도 전차 안에서 사람을 밀쳐놓고 내가 세상에 나기 도 전에 폐지된 신분제도를 들먹이며 신분증을 내놓아 보라는 꼴이 하도 얄미워 몇 대를 두들겨 패주기로 한다. 아니 그런데 얽혀 싸움질을 하려니까 이놈 무슨 힘이 이리 센지. 기력이 다해 도와달라 소리 쳐 봐도 다들 싸움질을 말릴 생각은 않고 빙 둘러싸고 무표정한 얼굴로 아까 들여다보고 있던 손전화기만 나한테 들이대고 있다. 뭐 이런 무심한 사람들이 다 있는지. “아이고 나죽네” 목청껏 외쳐도 요 지독한 녀석은 끝내 내 목을 붙들고 전차 밖으로 끌어 내 주먹질이 계속 이다.
여전히 아무도 도울 생각을 않는 와중에 저기서 호루라기를 불며 순사가 뛰어온다. 아이고 괜히 소란을 피워 순사한테 잡혀가면 소란죄부터 돈 없는 죄 안씻는 죄 운운하며 혼쭐이 날 터인데. 나를 패는 요놈은 아까부터 양반의 자식이다 하는걸 보니 공연히 나만 또 곤봉으로 두들겨 맞겠구만. 오늘 결국 나 죽겠네. 아니다. 아까 얻은 500원짜리 은화가 있지. 저 순사 손에 꼭 쥐어주며 귀한 것이라고 싹싹 빌어 꼬시어 봐야겠다. 어휴 한숨 놓았네.
(071004, 나캉, elite_ali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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