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파일] 5월 15일 - 10강 도시와 문학: 좌이용밍, 하이즈, 왕안이 그리고 리우헝(강의: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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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현대문학
중국문학은 19세기 말부터(무술정변 전후) 새로운 변화를 잉태하고 발생시켰으니 이것은 바로 ‘고전’에서 ‘신’문학으로의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는 문학의 관념과 작품내용, 주제 및 예술기법 등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5․4 신문화운동 기간에 이르러 ‘질’의 비약을 이룬다. 이로써 중국문학은 ‘신문학’ 또는 ‘현대문학’의 시기로 진입하게 된다. 20세기 중국은 사회, 경제, 정치, 사상의 거대한 전환 과정에 처해 있었고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20세기 중국문학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각종 문학관과 유파 및 문학규범의 충돌, 융합, 흥망이 중국현대문학에 미친 영향이다. 그중에서 이미 1930년대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좌익문학’은 1940년대 마오저뚱의 ‘공농병(노동자, 농민, 병사) 문학’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게 된다. 이러한 문학의 형태 및 이에 상응하는 문학규범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그 영향력에 의해, 더 크게는 정치적 통제 역량에 의해 중국대륙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문학형태와 규범이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마오저뚱 시대의 종결로 인해, 이러한 일원화된 문학 구성 방식에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중국현대 작가인 펑즈(馮至)는 그들 세대의 작가는 19세기 서구 비판현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그들 세대의 작품에는 체홉, 모파상, 셀리, 하이네, 입센, 버나드 쇼 등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사회의 어둠을 폭로하기 위해서 19세기 비판현실주의의 소설에서 모범을 찾았고, 혁명에의 열정을 드러내기 위해 반항의 낭만주의에서 계시를 받았으며 구문학을 타파하고 새로운 방법을 추구하여 서구문학의 다양한 형식을 수용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중국현대문학의 기원에 대한 이해는 하나의 정치적 투쟁이기도 하였다. 후펑(胡風)과 펑시에펑(馮雪峰) 등은 5․4 신문학운동이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은 19세기 비판현실주의와 반항의 낭만주의이고 5․4 신문학은 이러한 근대 자본주의 문학의 최후의 지류라는 관점은 1950년대 주류계의 관점인 5․4의 신문학이 무산계급사상의 영도 하에 사회주의 현실주의 방향을 향해 전진한다는 관점과는 차이가 있었다.
중국현대문학은 현대민족국가의 주도적인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중요한 기지였다. 문학텍스트 이외의 모든 문학실천 특히 문학비평, 문학이론과 문학사의 건립과 운용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실천은 문학텍스트의 생산, 수용의 역사적 평가적 평가를 통제하고 사람의 감상활동을 지배함으로써 현대 민족국가의지에 복종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중국현대문학 속의 도시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먼저, 아름다운 산수로 인해서 중국고대 부터 시인들이 많이 출생했던 쓰촨 성 청두에는 현대중국에서도 특히 시인들이 많이 배출해내었다. 쓰촨성 청두 출신의 당대중국 시인 좌이용밍의 시세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리고 아직도 중국에서는 “내가 예전에 시를 좀 썼지요”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꽤 많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는 누구나가 다 시인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베이징 주변의 카페에서는 시낭송이 자주 열리고 많은 시인들이 베이징 대학 주변을 배회한다. 베이징은 주변인 예술가의 중심지 이다. 1980년대 학원시인의 대표적 인물인 하이즈와 하이즈의 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중국문학에는 베이징 특색을 표현해내는 경파(京派)와 상하이 특색을 표현하는 해파(海派)가 있다. 상하이의 작가 왕안이와 베이징을 묘사하는 리우헝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2. 좌이용밍: 글쓰기, 개인의 목소리
1980년대 중국 문화적 상황을 인성, 인도주의의 부활, 문학의 심미적 기능이 회복한 시대라 한다면, 1990년대 이후는 다양한 공생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의 문학은 五四 계몽운동을 계승하는 입장이었으나, 1980년대 말 그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중국 당대시가는 1980년대 초에 문화적 선봉의 역할을 담당하였다면, 1990년대 이후 당대중국문화의 주변적 위치에 머무른다. 시대와 문화의 적극적 참여자와 반영자의 역할을 한 중국당대시가는 문화적 내부의 변동에 의해 그 기능이 소실되어졌다.
1990년 이후, 당대중국시인의 현실은 역사가 개인에게 가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소비주의 시대의 유혹을 마주하고, 시인이 경험하는 내면은 애매모호하고 복잡하며 분열적이라 할 수 있다.
좌이용밍(翟永明)의 시는 창작초기에는 내면적 정서와 생명경험에 중점을 두어 표현하다가 점차로 현실적 생존상황의 묘사와 그 서술을 중시하게 된다. 좌이용밍의 글쓰기는 그 자신의 정신적 의미에서 세계를 ‘다시 명명하는’ 창조적인 힘을 가진다. 좌이용밍에게서 글쓰기는 시인자신의 창세(創世)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즉 “내가 목격하고 내가 창조한다”. 좌이용밍의 흑야(黑夜)의식은 이러한 ‘다시 명명하는’ 작업을 실현한 것으로 흑야 그 자체가 여성의 세계가 아니라, 그것은 여성이 창조한 세계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좌이용밍 시가의 특징인 ‘개인의 목소리’, 글쓰기 방식으로서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좌이용밍은 1980년대 중반, 시집 『여인(女人)』이 발표된 후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 시의 중요한 의의는 ‘개인의 목소리’로서 읽는 시로서의 중국시의 전통의 계승과 발전에 있다. 베이다오(北島), 수팅(舒婷) 등의 몽롱시의 개인의 목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중국문화는 5․4 지식인의 계몽정신을 계승한 개인담론으로서 집체담론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한다. 몽롱시인의 주체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역사적 주체로서 거대담론의 목소리이다. 1980년대 초 베이다오식의 회의와 분노, 수팅식의 우울과 힘찬 선율, 그들의 시는 계몽적인 의미에서 시대의 주류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들의 텍스트는 비장하고 격정적이거나 애절하나 슬픔은 없는 리듬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좌이용밍 시의 목소리의 특징은, 1980년대 시대담론의 배경 하에서 자기 시의 독특한 목소리로 이러한 시대배경과 거리를 두고 있다. ‘개인의 목소리’ 라는 시 특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시 본래의 언어, 리듬, 운율 등과 연결되어있다.
전체 중국당대 문학사(1949-)의 흐름을 이해하고 읽은 경험에 의하면, 중국 당대 어느 단계의 역사시기에는 문학의 직접적인 의도는 거대서사의 주류 담론를 세우는데 그 목표를 두었는데, 그것에 적응하든, 그것에 반대하든 결과적으로 이러한 목표에 종사하였다. 글쓰기의 의미를 이러한 ‘이미 설정되어진 의의’ 에 두고 스스로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글쓰기는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좌이용밍의 글쓰기 입장은 20세기 중국 상반기의 창작 경향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사회주의 시기 역사에 의해 단절되고 일체화를 향한 사회주의 시기 문화와 역사에 의해 제외되어졌다. 좌이용밍의 글쓰기는 20세기 상반기의 시인 쉬즈머(徐志摩), 빙신(冰心), 무단(穆旦)의 창작과 허치팡(何其芳), 펑즈(馮至)의 시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목소리는 좌이용밍의 시에서 표현되어진 것처럼 구체적이고 내재적인 개인의 목소리이다. 그녀의 시에서 우리들은 그 시대 주조음의 인용을 들을 수 있으나,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그녀 자신의 이해와 해석으로 변해져있다.
먼저, 나는 지금 소실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수리나무는 무엇을 말함인가? 「臆想」
이 시의 ‘나’는 몽롱시인들의 위대한 역사적 주체도 아니고, ‘상수리 나무’ 역시 여성의 문화적 신분의 대응물로서의 역활을 반복하지 않는다.『상수리나무에게(致橡樹)』등의 작품에서 수팅은 부드러운 여성, 강한 남성, 그리고 여성은 남성의 든든한 어깨가 필요하다는 등의 전통적인 성별의 역활을 답습한다. 좌이용밍은 20수 연작시 형태의『여인』에서 ‘나’의 탄생의 길고 어려운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미 뚜렷한 주체로 확립된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질문과 모색 끝에서야 구체적이고 생동적인 형상으로 그 자신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게 된다. 그리고 이미 관념에 의해 설정된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보여지고 관찰당하는 ‘타자’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좌이용밍의 시는 초기에는 독백식의 언어방식을 사용하다가 점차로 대화의 방법을 사용한다. 독백이 아닌 대화의 글쓰기는 좌이용밍의 시로 하여금 언제나 듣고 보는 이중적 시각을 가지게 하고, 시인이 자아를 분석하는 입장을 가지게 한다.
1980, 1990년대의 변화무쌍한 시단에서 좌이용밍이 자기의 창작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떻게 언어의 연금술을 모색할 것인가? 어떻게 자기내면의 리듬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자신과 만물이 교류할 때의 변화 중의 불변, 또는 불변 중의 변화를 의식할 것인가?‘변화’에 대한 인식은 좌이용밍의 글쓰기를 대상과 자기관찰의 이중적 시각 사이에서 진행하도록 하였다.
어느 날의 변화가 영원이 되고
어떠한 원인 때문인지는 불명확하네
한 면의 거울이 방을 가득 채우고
모든 변화는 피난처를 찾는다.「변화(變化)」
‘변화’라는 이 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두 시점을 가진 구조이다. 첫 번째 부분은 변화의 원인을 묻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구체적인 생활의 관찰 속에서 ‘반드시 변화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변화의 소리에 귀 기울임은 나를 이지적으로 되게하고
나를 생명이 서있는 위치와 거리를 둠으로서
나는 강한 존재인 척 한다.「변화」
글쓰기는 ‘생명의 위치와 거리를 둔 위치’ 에서 실현되고, 이것은 시인이 자기와 교류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이로서 한수의 시 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자아에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와 자아를 확인하는 목소리이다. 이로서 시는 이중적인 목소리가 서로 유동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좌이용밍 시 중에는 여성들 간의 대화가 자주 소재가 된다. 『여인(女人)』,『정안장(靜安庄)』시기에 그는 환상과 시간 속에서 자기와 소통하려하며, 후기의 시가에서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사랑, 죽음과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여인』연작시 중에 『모친(母親)』은 가장 감동적인 시편으로 생과 사라는 시각으로『모친』을 다시 읽으면, 좌이용밍 시의 주제는 시인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은 나를 맷돌 속에 두어, 내 자신으로 하여금 직접 자신이 빻아서 부수어지는 것을 보게 한다./ 아! 어머니, 내가 결국 침묵하게 되었을 때 당신은 이 때문에 기뻐하지 않았는지/ 내가 어떻게 아무 흔적도 없이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비밀은 / 당신으로부터 왔고, 나의 두 눈은 마치 두 개의 상처가 고통스럽다는 듯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살기위해 살아가고, 나는 멸망을 취함으로 자고이래의 애정에 대항하고/ 돌 하나가 버려진 후, 골수가 바짝 마른 것처럼 될 때까지, 이 세계
고아가 있었고, 모든 축복은 그 남겨진 것이 없음으로 드러났고, 그러나 누구든 가장 뚜렷하게 아는 것은/ 어쨌든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사람은, 태어남으로써 결국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모친」
『작은 술집의 상황이라는 주제(小酒館的現場主題)』라는 시 제목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현대적인 의사소통 공간이고, 즉흥적이고, 상황적이고, 우연적이고 개인적인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現場主題’ 는 시인의 자기의 경험에 대한 개괄적이고 예리한 파악이다. 글쓰기 과정 그 자체를 통해서 시인은 그녀가 표현하려는 사물을 포착한다.
갈색과 긴 밤
한잔의 진 토닉을 들고
주위의 여러 시끄러운 소리에다 더해진 주스
나 혼자 남겨두고 그 냄새를 참으라 하네.
여기에서 이미 설정되어진 대립되는 상황을 볼 수 있는데, ‘긴 밤’과 ‘한잔의 진토닉’ 그리고 ‘주위의 여러’와 ‘나 혼자’는 공간의 크고 작음을 의미하며, 시끄러운 환경과 고독한 개체로 내재적으로 대립된 존재를 의미한다. 이러한 존재의식은 전체 시에 계속되고, 전체 시의 주제에서 성별의 대립관계가 시인의 그 즉흥적 경험에서 다루어지고, 이로서 이 시의 시작에서의 긴장상태는 시인의 ‘거절’의 입장에 맞는 상황을 제공한다.
그러나 나는 다만 술을 가볍게 넘기며
너희들에게 이야기하길: “아무 것도 없어”
본문 중에서 성별과 신분은 불확정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복잡성을 가진다. 나, 여인, 여자아이, 여자 손님과 남자, 그들, 고급미학(美學上級), 너희들, 흑의를 입은 재판관 등으로 표현되어진 단어사이에는 불확정적이고 불완전한 대응의 관계로서 시인의 성별관계에서의 민감하고도 뚜렷한 입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시인의 ‘거절’이라는 확고한 입장은 단지 성별로 인한 억압만이 아닌, 어떠한 ‘규칙’에 대한 거절도 포함하며, 독자적이며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녀의 환각 속에서 그녀와 카드놀이를 하는 ‘죽음’의 형상 즉 흑의 재판관의 형상은 시에서 압박감을 생기게 함으로서 시 전체에 절망적인 긴장감이 깃들게 한다.
“어떤 것도 없어”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말하길: “없어”
“마지막이야” 그녀의 음조
마음으로는 그와 입술을 맞추네
푸른빛이 나는 말간 하얀 손
‘절망’을 버린다.
나는 ‘오래도록 같이함’으로 화답하나
그의 반응은‘불길함’
그러나 나의 판단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인식에 의하면
한 자살자의 포옹력으로
그의 움푹 내려앉은 두개골과 함께
모두 소모되어 버리다.
한 여성의 슬픔과 어쩔 수 없다는 생존의식이 집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좌이용밍의 생존한계에 대한 체득은 개인정신의 복잡한 면을 언급하고 있다. 시인은 그녀가 참여하는 일상생활과는 기묘한 거리감을 형성하는데 그녀는 ‘거절’이라는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함으로서 그 특유의 풍자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지킨다. 이 ‘거절’은 일체의 문화가 시인의 몸에 존재함으로 인한 억압에 대한 시인의 입장을 말한다.
여인은 손으로 그의 작은 펜을 들며
그녀의 마음을 들어 ‘거절’을 마신다.『작은 술집의 상황이라는 주제(小酒館的現場主題)』
좌이용밍의 상황식의 시가는 일상생활과 기억 사이의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건립하였다. 일상생활과 시인의 기억, 역사에 대한 상상 등, 1990년대 좌이용밍 시가의 중요한 부분으로 어느 정도 그녀의 시각의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제재의 다양화와 글쓰기 기술의식의 증가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여성 시인은 개념적 글쓰기에서 기술적 글쓰기로 강화되어야한다”고 말한다.
3. 하이즈: 중국신시의 가능성과 극단의 실험
하이즈(海子1964-1989)는 중국의 독자와 비평가에 의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당대중국의 선봉시인이다. 하이즈는 농촌출신으로 1980년대 베이징대학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하이즈는 몽롱시의 영향 하에 그의 시창작을 시작한다. 그러나 하이즈의 시에는 몽롱시인의 역사적 심각함은 없고 원시적 형태로 되돌아가려는 자유의지가 있다. 기원적 의미에서의 생명형태가 아닌 구조적 의미에서의 원형을 말한다.
‘밀밭(麦地)’ 의 이미지는 1985년「밀밭」에 처음 출현한다. ‘밀밭’의 이미지가 출현한 후 시인은 마치 자신에게 속한 단어를 찾은 것 같았다. 그 후 시인이 자주 사용하던 이 시어는 명확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는 밀밭(麦地), 대지(土地), 촌장(村庄), 고향(家乡), 양식(粮食) 등으로 이어지는 땅과 농사에 대한 원초적 신화를 다시 쓴다.‘麦地’와 ‘전원(田园)’은 다르다. 중국고대시 중의‘전원’은 시인의 은거의 장소이지 뿌리를 내리는 곳은 아니다. 하이즈는 고대시인의 문인기질에 대해서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취미로 변한다”고 비평하고, 자신은 “문인적 취미를 버리고 직접적으로 생명 그 자체에 주목한다. 이것이 중국시의 새로운 길이다”라고 말한다.
하이즈의 서정단시는 그의 장시를 초월한다. 하이즈는 중국 신시사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시인의 하나이다. 하이즈의 짧은 생애 중에 창작한 서정시는 이백 여 편에 달하고 장시는 7부에 달한다. 이러한 다산과 높은 질은 시인의 창작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이즈의 친구이자 시인은 시추안(西川)의 기억에 의하면, 하이즈는 매일 저녁 7시에 시작하여 밤을 새워 아침 7시까지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아침에 자고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에는 다시 계속해서 창작을 했다고 한다. 그의 집중적이고 긴장된 창작방식에는 강렬한 자아 소모적 특징이 있다.‘시는 생명리듬의 소모이고, 그만의 감정도 있다.’
밀밭/다른 사람이 너를 보고/네가 온화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나는 너의 고통스러운 질문의 중심에 서서/너에 의해 화상을 입고/나는 태양의 고통스러운 망망함 앞에서/밀밭/신비스러운 질문자여/내가 고통스럽게 너와 마주할 때/너는 내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없다/밀밭, 인류의 고통은/그가 발사한 시와 빛이다.「答复」
내일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말을 키우고 나무를 베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려 한다/내일부터 양식과 채소에 관심을 가지려한다/나의 집은 바다를 마주하고 화창한 봄날에는 꽃이 핀다/내일부터, 가까운 모든 사람과 연락을 하리라/그들에게 나의 행복을 말하리라/그 행복한 번갯불이 나에게 알려준다/나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리라/모든 강과 산에게 따뜻한 이름을 지어주리라/낯선 이여, 나도 너를 위해 축복하리라/너에게 찬란한 장래가 있기를 바라노라/너에게 끝까지 함께하는 연인이 있기를 바라노라/너가 속세에서 행복을 얻게 되기를 바라노라/나는 단지 사면의 바다를 바라보며 화창한 봄날에 꽃이 피기를 바라노라.「바다를 마주하고 화창한 봄날에 꽃이 피다(面朝大海,春暖花开)」
하이즈의 시의 가치는 그의 개인성으로 존재한다. 하이즈의 중국시를 본질적 구조로 환원하려는 노력은 승리와 실패로 평가할 수 없다. 릴케는“승리는 모든 것을 견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으나 하이즈는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하이즈는 “나는 반드시 실패하리라. 그러나 시는 태양으로서 반드시 승리하리라”라고 한다.
후기 창작에서 흑야(黑夜)를 자주 사용하는 시인에게는 그 자신의 체험이 있다. 깊은 밤에 창작하고 여명을 맞이하던 하이즈는 그의 생명의 최후의 시기에 내면의 흑야를 맞이하게 된다. 이 흑야는 어둠과 절망의 동의어가 아니고 내면과 외부 세계의 호응이고 생존 경험의 진면목을 드러냄이다. 이로서 시인이 흑야에서 노래 부르며 길을 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망설임 없이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을.
흑야는 대지 위에서 떠오르고/광명의 하늘을 가리고/수확 후의 황량한 대지/흑야는 너의 내부에서 떠오르다/너는 멀리로부터 오고, 나는 멀리 가려한다/요원한 노정은 이곳을 통과한다/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왜 나에게 위안을 주는가/수확 후의 황량한 대지/사람들은 일년의 수확을 가져가고/양식을 가져가고 말을 타고 갔다/땅에 남은 사람은 깊이 묻고 있다/쇠스랑이 반짝이며 빛을 내고, 짚무더기는 불에 타고 있다/벼무더기는 어두운 곡물창고에 있고/곡물창고는 아주 어둡고 아주 조용하고 아주 풍작이다/그리고 너무 황량하여 나는 풍작 중에서 염라대왕의 눈을 보았다/검은 빗방울과 같은 새무리/황혼에서 흑야로 날아든다/흑야는 아무 것도 없는데/왜 나에게 위안을 주는가/길을 가며/노래를 부르고/바람이 언덕을 지나가고/위에는 끝없는 하늘이 있다.「흑야의 헌시: 흑야의 딸에게 바치다(黑夜的献诗:献给黑夜的女儿)」
“태풍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고, 흑야인지 여명인지 상관없다”(「春天,十个海子」) 생존에는 통찰이 필요 없고 대지 자신으로 나타난다. 이 시에서 하이즈는 자신의 속세에서의 사명이 이미 다했음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는지? 하이즈의 운명에 대해 과장할 필요는 없고 더욱 평범한 사람의 생각으로 하이즈의 자학을 짐작할 필요는 없다. 한편의 시의 통일성은 정서의 통일성이다. 시의 이미지는 무엇을 서술하느냐가 아니라 서로 비추어 어울림에 의해서 정서를 표현한다. 감정이 시로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감정일 뿐이다.
현대 중국어를 사용하여 창작한 시는 격률시의 전통이 없기 때문에 운율의 사용과 절을 나누는 규정이 없다. 그래서 중국신시의 창작은 어떤 의미에서 실험작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결핍으로 이해하여 불행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행운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적 정해진 구속이 적은 신시창작에 있어서 시인은 자신의 시어에 더욱 전념할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독특한 어휘, 리듬과 이러한 과정 중의 실패라는 댓가를 지불해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하이즈의 서정시는 강렬하여 기억에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하이즈 서정시의 리듬은 언제나 정확하게 그가 표현하려는 정서와 감정에 부합한다. 이 점에서 하이즈의 어휘를 답습하려는 모방자도 배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편의 시의 리듬은 반드시 시인의 내심의 리듬과 장단이 맞아야하고 시인이 선택한 시어도 필연적으로 이 리듬을 위해 준비되기 때문이다.
4. 상하이 취향(海派)의 문학: 왕안이
모든 도시는 그의 서술자에게 언어, 경험과 서술을 제공해준다. 중국 현대문학에서 상하이(上海)는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그 자신의 위치와 의의가 있었다. 중화민국 초기의 원앙호접파(鴛鴦胡蝶派) 소설과 근대 상하이의 흥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1930, 1940년대 신감각파(新感覺派) 무스잉(穆時英) 등의 그 신선한 감각과 현대적 기교는 중국문학전통과 혁명적 단절을 일으키고, 이러한 새로운 문학경험은 현대도시 상하이가 부여한 것이고, 그것은 단지 상하이에서만 생산되어졌다. 1940년대의 장아이링(張愛玲)은 상하이 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상하이 시민의 일상생활을 그려냈다.
1980년대 이후 상하이는 마치 묻힌 역사가 다시 발굴되어지는 것처럼, 문학에서 새롭게 표현되어지게 된다. 왕안이(王安憶)는 1980년대에『남성과 여성, 여성과 도시(男人與女人, 女人與城市)』에서 여성과 도시와의 모종의 연맹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고, 1990년대『장한가(長恨歌)』,『홍콩의 정과 사랑(香港的情與愛)』에서 여성의 생활과 심리의 세심한 관찰로서, 상하이와 홍콩 이 두 도시의 역사적 변천과 문화적 함의를 전개하고 있다.
왕안이와 1980, 90년대 문학주류와의 관계, 그리고 1990년대 이래 중국문단의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인 ‘상하이와 현대성 담론’ 속에서 왕안이의 상하이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서 왕안이라는 작가의 글쓰기 이상과 추구를 읽어보고자 한다.
왕안이는 ‘문화혁명’을 경험한 지식청년 작가이다. 1980, 90년대의 중국소설문학의 중요한 흐름은 상흔문학, 반성문학, 뿌리찾기문학, 지식청년문학, 실험소설, 신사실주의 소설 등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왕안이의 창작은 이러한 흐름 중에서 비교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주류적 입장을 가진다고 할 수 있지만 그녀의 작품은 문학의 주류담론이 중국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때 그녀는 긍정적인 태도로 중국문화를 이야기한다. 또한 주류담론에서 중국문화와 역사에 긍정적으로 호응할 때 왕안이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녀는 이러한 ‘주변(邊緣)’의 입장을 “산밖에 산이 있고,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로 설명한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문혁’에 대해 비판하고, ‘문혁’과 당시의 역사를 반성하는 자세를 취할 때, 왕안이는『유실(流逝)』를 쓴다. 그녀 역시 ‘문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러나 일상생활에 그 중심점을 두었다. 당시에 동시대인들이 ‘문혁’이 박탈한 것에 대해 쓰고 있을 때, 그녀는 ‘문혁’에 대한 망연자실한 성찰을 표현한다. 상흔, 반성의 문학조류 속에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왕안이가 추구한 것은 오히려 또 다른 어떤 가능성, 즉 그 재난 속에서 아마도 있을법한 ‘수확’이었다. 어우양돤리(歐陽端麗)의 일상생활의 변화를 통해 그 ‘재난’이라 불리는 시대에 있었을 어떤 ‘수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작품에서 언급하기를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었다. 그것은 결코 헛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왕안이 글쓰기의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글쓰기 과정 중의 구성과 해체의 서술방식을 통해 그 글쓰기 과정 중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확정성의 서술은 문화의 규정된 언어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녀는 이러한 불확정적인 전복적 서술방식을 취한다. 왕안이 창작에서는 반어적 서술 그자체가 소설의 내용과 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반어적인 서술은 『아저씨의 이야기(叔叔的故事)』에서는‘성별’입장에서의 전복과 반항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는 서술자 ‘나’의 성별에 대해서 언급이 전혀 없는데, 작가가 의식적으로 은폐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문학의 전통적 서술방식과 ‘아저씨’ 세대의 문학에서 서술 언어를 통제하는 것은 대다수의 남성이다. 그러나『아저씨의 이야기』는 여성작가가 쓴, 여성시각의 서술자 ‘나’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기에 이미 ‘기존의 서술규칙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아저씨의 이야기』에서 왕안이의 반어(反諷)적 서술은 서술자의 관점에 따라 한 가지 내용에 여러 종류의 다양한 서술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이러한 관점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복잡한 관계를 만들고, 이러한 서술은 각자의 서술이 포함하는 의미에 대해 서로 의심하는 서술적 관계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확정적인 서술로 전개될 때, 과연 하나의 이야기의 진실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왕안이는 확정적인 서술에 대한 반어적인 서술로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회의를 던진다. 작품 중의 ‘나’는 원래 ‘아저씨’의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그 확정적인 ‘진실’이 사실은 단지 ‘서술’의 진실 일뿐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상하이와 현대성 담론’에서의 상하이에 대한 글쓰기에서는 사회주의 혁명 시기의 역사를 비현대적인 요소로 간주하고 연구의 범위에서 제외시키는 추세인데, 그녀는 사회주의 혁명시기의 상하이를 그려내고 역사적인 흐름에서 빠트릴 수 없음을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상하이와 현대성담론’의 많은 연구들이 상하이와 서구세계와의 충돌 부분에만 주목한다면 왕안이는 상하이의 기억과 현대의 상하이의 연결과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왕안이는『장한가』에서 그녀의 상하이에 대한 모든 경험과 상상을 총괄하였는데, 왕안이의 도시 상하이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녀는 이러한 경험을 객관화 하였다. 왕안이는 왕치야오(王琦瑤)라는 여인을 발견해냈고, 왕안이는 이 여인의 일생을 통해서 상하이의 역사를 쓴다. 왕치야오의 역사는 바로 상하이의 역사였다. 왕안이는 주류담론 속에서의 상하이의 형상을 버리고, 상하이의 민간 형태 속으로 들어가서, 꿈처럼 번화했던 상하이를 그려내려고 하였다. 1980년대 이후 상하이는 마치 40여 년 전의 번화함을 기억하듯 모든 것이 급격히 변하지만 이러한 도시의 변화 속에서도 상하이 정신은 변하지 않고 그 정신은 늘 불변으로 부단히 변화함을 의미한다.”사회주의 시기에도 “상하이의 바탕색은 퇴색하지 않았고 그것은 농탕의 창문커텐 뒤에 숨어있었을 뿐이고 상하이는 상하이다”라고 한다. 왕안이는 상하이 여인 왕치야오의 일생을 통해서 상하이의 영혼과 정신의 핵심을 찾고자 했다.
왕안이는 자신의 모든 글쓰기 경험을 기록한, 그리고 자신의 모계 가족사를 추적함으로써 ‘자기’의 근원을 찾는 작품인『기실과 허구: 세계를 창조하는 방법의 일종(紀實與虛構:創造世界方法之一種)』의 서문에서 말하길, “아이인 그녀는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시간상의 위치는 언제이며, 공간상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 문제는 듣기에 심오하고 아주 심오하였는데, 사실 본질적인 문제는 즉 그녀가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되고, 또 그녀주위의 사물과 어떤 관계로 자리 잡고 있는가이다. 아이인 그녀가 계산의 방식으로 종적과 횡적인 관계의 문제로 나누자 일체는 아주 간단해졌다.” 이것은 왕안이 창작의 본질적인 문제의식이다. 상하이의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왕안이 그녀의 뿌리 없는 가족사 때문에, 왕안이는 상하이라는 이 도시에서 정신적으로 거리감을 가진 거주자였다. 이 역사가 없는 거주자는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모색하게 된다. 그래서 왕안이는 글쓰기를 통해서 모계와 부계가족의 역사를 추적하게 되고, 자기정체성의 역사적 근거를 추구하게 된다. 즉 그녀가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의 문제에 대한 고찰을 한다. 그리고 왕안이 그녀는 그녀 주위의 사물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의 문제를 고찰하게 되는데, 즉 왕안이는 개인의 기억과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대도시 상하이와의 관련성을 서술한다. 상하이가 가지고 있는 기호와 의의가 어떻게 왕안이의 기억과 생명 속에 들어오게 되는지, 대도시와 한 여성의 깊은 관계가 어떻게 창작 속에서 성립되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왕안이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전개되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베이징 취향(京味)문학
리우헝(刘恒)의「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을 통해 본 베이징의 서민문화
1980년대의 ‘京味’소설에 표현된 베이징은 민족문화의 발굴과 재 건립이라는 중국인들의 역사적 추구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베이징에 대한 향수적 글쓰기가 유행하게 된다. 1990년대 이후 베이징에 대건설붐이 일어나게 되면서 베이징 문화의 상징이었던 후통(胡同), 따짜이먼(大宅门), 사합원(四合园), 따자위엔(大杂院)이 사라지고, 그 건축공간이 지니고 있던 문화적 기억 또한 사라져가게 되었다. 베이징에 대한 향수적 글쓰기는 이러한 현실적 변화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글에서 분석할 리우헝(刘恒)의「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贫嘴张大民的幸福生活)」은 베이징의 변화, 즉 후통이 철거되고 아파트로 이주하는 서민의 생활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의 서민인 장따민(张大民)은 구러우(鼓樓) 부근 후통의 두 칸짜리 방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다섯 형제와 함께 살고 있다. 작가는 이들 6명의 식구가 좁은 공간에서 함께 거주하는 열악한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은 TV 연속극, 영화, 라디오 연속극, 만화, 평극(評劇) 등 다양한 문화형식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이 작품은 영화「틈틈히 즐겨라(没事儿偷着乐)」(杨亚洲 감독, 冯巩 주연, 1998)와 TV연속극「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杨冠华 주연, 1999)로 제작되어 중국에서 상당한 호평을 얻었던 것으로 이야기된다. 영화「틈틈히 즐겨라」는 저명한 샹성(相声) 연기자 펑공(冯巩)의 고향인 텐진(天津)을 배경으로 텐진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텐진 사람들에게 환영 받았다. 특히 펑공(冯巩)은 장따민을 연기하면서 언어 마술사로서의 자신의 내공을 십분 발휘하여, 그해 중국 영화제(金鸡奖)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TV 연속극「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이야기」역시 중국 시청자들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 속편이라 할 「아름다운 집(美麗的家)」(安战军 감독,杨冠华 주연, 2000)이 설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한다. 속편에서는 장따민이 아파트로 이사한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작품이 영화와 TV연속극을 통해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게 되자 화예출판사(華藝出版社)에서는 새해맞이 총서로 그 단행본을 출판하였는데, 그것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후반은 문학의 주변화가 이미 심각하게 진행된 시기였다. 당연히 문학작품의 영화 제작이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 없는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작품이 대중매체의 생산방식을 통해 제작되고, 전에 없던 높은 호응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어떠한 힘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인가?
그 출발점이 되는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작품은 베이징의 서민인 장따민의 개인사, 즉 결혼, 아들의 출생, 직장에서의 해고, 그리고 후통의 철거와 아파트로의 이사 등과 같은 생활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 장따민과 그의 동생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장따민은 낙관적이고 열정적이고, 유쾌한 성격의 인물이다. 그는 부친이 보온병 공장에서 일하다 보일러 폭발사고로 사망한 후 수다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원래 멍청하고 동작이 굼뜨던 그의 이러한 변화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내적 고통의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장따민의 수다는 힘든 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이자 그의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인공의 수다와 풍자, 그리고 낙관적인 태도는 기존의 리우헝 작품을 관통하던 무거운 분위기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리우헝은 이 소설에서 구어체를 사용하여 가장 실제에 가까운 베이징 서민의 생활을 표현하고자 하였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베이징식 정신문화가 생존의 최소조건조차 결여된 후통 따자위엔의 서민들에게 중시되거나 계승되기는 어렵다. 그런데「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은 분명한 경미(북경특색이라는 뜻,京味) 문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경미 문학의 특징이 분명한 언어형식과 경미 문화를 풍격으로 하는 풍부한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탕홍펑(唐宏峰)은 이렇게 단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경미 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언어라는 뚜렷한 표지 외에 일종의 풍격과 유파로서의 경미 문화가 갖는 보다 넓은 내용들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경미 문화의 핵심에는 ‘세속적’인 것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세속적 성격은 철저하면서도 완전한 자질구레한 일상사가 된다. 생활할 곳이 없는 상황, 더블베드를 배치하는 일, 가난과 싸움 등의 일상의 세속적 생활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은 일 등은 경미 문화의 특색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소설「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 이를 영화로 제작한「틈틈히 즐겨라」, 그리고 TV연속극「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을 중심으로 원작 소설이 대중문화의 방식으로 제작된 후 어떤 효과를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베이징문화의 특성과 연관하여 이들 작품 속에서 베이징(北京)언어의 특색인 ‘쏴핀쭈이(수다, 耍贫嘴)’, ‘칸따샨(侃大山)’, 유모어 등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베이징 사람은 언변에 능하다. 베이징 사람은 말에 뛰어나 특별한 언어재능과 유모어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라오베이징 사람들은 언어능력이 뛰어나고 구변이 출중하여, 이전에는 「베이징 뺀질이(京油子)」, 「수다(耍贫嘴)」라고 불리어졌다. 샹성(相聲)예술의 발전은 바로 이 재능의 산물이다.’‘「칸(侃)」은 베이징에서 아주 중요한 능력이자 자랑스러운 자산이다.’ 그리고 ‘베이징 언어능력의 또 다른 특징은 유머다’.
경미 문학작품에서는 베이징 사람의 언어유희에 대해 많이 언급되고 있다. 경미 문학작품 속의 베이징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말하느냐에 중점을 둔다. 즉 어떤 의미를 표현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면 말을 폼 나게 하느냐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베이징 사람들의 말에는 쓸데없는 말이 첨가되게 마련이다. ‘베이징 뺀질이(京油子)’와 ‘수다(耍贫嘴)’는 바로 이런 베이징 사람에 대한 가장 적절한 개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베이징의 언어특징이 지리적 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즉 베이징의 겨울은 춥고 길기 때문에 집안에서 소일거리로 ‘수다’가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베이징 사람들의 ‘수다’ 방식도 변하게 되어, 그 ‘수다’에 여러 가지 생활의 정보와 시사적 내용이 첨가되어진다. 이로서 1980년대 이후로 베이징에는 ‘칸따샨(侃大山)’이라는 언어가 유행하게 된다.” ‘칸따샨(侃大山)’은 사실상 ‘한담’이지만 ‘칸따샨(砍大山)’으로도 쓰여지고 월급, 방문제, 물가 등 각종 생활정보가 첨가된 ‘수다’ 를 총칭한다. 단순한 ‘수다(耍贫嘴)’와 ‘칸따샨(侃大山)’은 비슷하지만 그 차이를 논한다면, ‘「칸(侃)」은 여러 가지 정보의 집합으로 여러 가지 의견을 발표하고 여러 가지 사상을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베이징 언어의 특색으로 ‘티아오칸(调侃)’을 꼽기도 한다. ‘티야오칸(调侃)’은 수다에 풍자와 조소적 색채가 더해진 것을 말한다. 장따민의 ‘수다’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베이징의 연예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외모는 별로이지만 유머 감각이 있고 어떠한 말도 꺼리김 없이 쏟아놓는 말재주 뛰어난 호방한 풍격의 남성 연기자가 인기가 있다. 그래서 장따민의 역할을 맡은 배우도 영화에서는 펑공(冯巩)과 TV연속극에서는 양관화(杨冠华)가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외모가 그다지 출중한 인물은 아니지만 대체로 소탈하고 호방한 풍격의 사나이들이라 할 수 있다. TV연속극에서 윈팡이 결혼 전에 사귀었던 상하이 남성은 겉모습이 단정하고 말이 그다지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중국인들의 관념에서는 보편적으로 베이징과 상하이 남성을 사나이(漢子)와 샌님(小生)으로 구분하고 있고, 대중매체에서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장따민이 생기발랄하게 사람 앞에 등장하여 서민적 유머로 베이징 특유의 ‘수다’(耍贫嘴)를 떨기 시작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장따민의 수다는 베이징 문화의 특징으로 베이징인의 생활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낙관적인 생활태도는 진정한 베이징문화의 특색이다. 장따민은 어렸을 적부터 생활환경이 빈곤하고,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하층계급의 서민들이었다. 따라서 그의 풍자는 품격과 격조를 갖춘 고상한 것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베이징 언어문화의 특성인 통속성과 유머가 담겨있다. 장따민의 수다 속에는 생활에 대한 풍자보다 생활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어져 있다. 장따민의 아내 리윈팡(李云芳)이 결혼 전 사귀던 타월공장의 직장동료였던 엔지니어는 미국으로 가면서 그녀를 차버린다. 이때 리윈팡이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자, 장따민은 그녀에게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설득한다. 그것을 설명하는 비유는 가장 통속적인 것으로, 간단하게 연령과 음식의 계산법과 금전가치 방법을 예로 든다.
윈팡, 내가 너를 대신해 계산을 해볼게, 네가 밥을 안 먹으면 매일 3원이 절약돼. 이미 9원이 절약됐어. 네가 만일 다시 9원을 절약하면 화장을 해도 될 거야. 너 무슨 말인지 알겠니? 이 일은 누구한테도 이득이 없어. 네가 굶어 죽으면 너의 엄마는 단지 18원이 절약될 수 있을 뿐이야. 너는 유골함이 얼마인지 알아? 우리 아버지 유골은 항아리에 담았는데도 30원이 들었어! 너는 아주 예쁘니 80원 짜리 유골함을 사지 않고서야 너를 어떻게 담을 수가 있겠니! 이렇게 거의 1개월을 먹지 않으면 돼. 너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이 일은 마무리가 지어질 것이야. 네가 아직도 너를 담을 유골함을 살 돈도 벌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윈팡, 시위엔의 샤오산의 할머니는 아흔여덟 살이라고 하더라. 너는 스물셋, 아직 칠십오 년을 더 살아야 아흔 여덟이 돼. 아직 칠십오 년의 밥이 네가 먹기를 기다리고 있어. 지금 먹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니! 내가 너 때문에 부끄러워 죽겠어! 내가 너 대신 밥을 먹어줘도 돼.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니? 신을 신고 얼른 내려와, 윈팡, 밥 좀 먹어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밥이란다. 좀 먹어라.”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더욱 생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긴 설득에 이어 다음과 같은 말이 더해진다.
윈팡,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밥이고, 밥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바로 국수이고, 국수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속에 든 마늘이다. 마늘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너보다는 예쁘지 않다. 윈팡, 제발 밥 좀 먹어라.
이러한 장따민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인 윈팡이 결혼을 하자고 한다. 이렇게 그녀를 사모하던 장따민의 꿈은 이루어져 윈팡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을 하려고 하지만 가장 큰 방문제가 남아 있다. 두 칸의 방에 여섯 식구가 살고 있는데, 어디에 신혼방을 꾸민단 말인가? 가족들의 양해를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장따민은 자신의 수다로 자신의 결혼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양해를 구한다. 소설에서 장따민은 보온병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자신의 직업적 특성을 발휘하여 끓는 물을 보온병에 담아야 하는 것으로 결혼을 비유한다.
한 달 후 나는 결혼을 한다. 원래는 석 달 후에 하기로 했지만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다. 물이 갑자기 끓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하여 갑자기 끓게 되어 보온병에 담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끓는 물을 보온병에 담고 두껑으로 닫아야만 마음이 놓인다. 그런 후 차를 마시든 발을 담그든 마음가는대로 하면 된다. 무슨 말인지 알지? 이것은 나의 첫 결혼이다. 나는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생각할수록 잠이 오지 않았는데, 결혼할 사람은 있고, 바로 문 앞에 서있지 않느냐. 문제는 나에게는 신방을 차릴 데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것을 ‘봄이 왔다. 봄이 왔으니 농작물을 심어야 하고, 가을에 거두어들어야 겨울에는 편안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지금 봄이 왔으니 결혼을 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자신의 결혼의 당위성을 설득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좁아터진 두 칸의 방에서 동생 싼민이 장따민에게 결혼을 한다고 이야기할 때에도 소설에서는 ‘나의 물도 끓는다. 나도 보온병에 담아야한다’(我的水也开了,我也要灌暖壶)라고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형, 나에게도 봄이 왔어’ 라고 말하며, 형에게 자신들의 신방을 꾸며달라고 한다.
윈팡의 전 남자친구가 미국에서 잠시 귀국하여 윈팡 공장의 직원을 식사에 초대하면서 윈팡도 초대하게 된다. 그녀는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장따민은 흔쾌히 가라고 한다. 그러나 장따민은 마음이 불안하여 망설이다 결국 그녀가 초대받은 고급 음식점에 몰래 뒤따라 가게 되고 음식점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훔쳐본다. 그리고 장따민은 일생의 최대 위기와 마주하게 된다. 서른여섯 해를 열심히 살아왔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늦게 집에 돌아오니 그 엔지니어가 윈팡에게 준 달러가 거실의 탁자위에 놓여있다. 모두에게 주는 선물 속에 넣었기 때문에 윈팡도 집에 와서야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 일로 부부는 싸움을 하게 된다.
뒷날 돈을 돌려주기 위해 장따민은 바로 그날 미국으로 떠나는 엔지니어와 잠시 만나게 된다. 전날의 기가 죽은 모습과는 다르게 장따민은 그의 허풍과 수다로 엔지니어를 어찌할 줄 모르게 한다. 그 모습을 소설에서는 ‘입, 목소리에서 개가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멍멍멍멍하고 그 자신조차 무엇이라고 짓어대는지 몰랐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따민과 그 엔지니어가 징륜(京伦)호텔의 로비에서 만났을 때는 비행기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엔지니어는 장따민이 돌려준 돈 봉투를 받고서는 계면쩍어 얼굴을 붉히면서, 시계를 보며 우물쭈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다. 장따민에게는 그의 이런 모습이 의외였다. 그러자 장따민의 조소와 수다가 시작된다.
미국에서 생활하신 지가 짧은 세월은 아니지요. 미국인은 사람도 아닙니다. 항상 우리 중국 사람을 시켜 접시를 닦게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중국인이라고 하면 접시닦이를 생각나게 하지요. 영어 단어에서는 중국을 도자기(瓷器)로 부른다는데, 진짜입니까? 중국어에서는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르는데, 나라면 됐지 아름답기까지, 그들을 너무 치켜세워요! 당신은 지금 미국인이니 잘 알겠지요. 그 곳은 아름답습니까? 사람이 살만한 곳입니까? 그들이 우리를 도자기라고 부르니 우리들은 미국을 접시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엔지니어가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는데도, 그의 말은 끝없이 계속된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그 수다는 멈출 줄 모른다.
내가 문을 열어드리지요. 비행기 타서 조심하세요. 지난주에 콜롬비아에서 비행기가 떨어져서 사람이 타서 숯처럼 되었다고 합디다. 미국에 가면 자주 연락합시다. 당신이 에이즈에 걸리면 나를 찾아오면 됩니다. 내가 어떤 노인을 알고 있는데, 고약을 배꼽에 부치기만 하면 어떤 병도 나아요……뉴욕에 가면 길거리에서 조심하세요. 누가 당신의 귀구멍에 총을 쏠지도 모르니까요. 하느님이 당신을 보호하시기를, 아멘!
그리고 엔지니어가 탄 차가 떠나자 비로소 그는 입을 다문다. 여동생 쓰민이 죽고, 직장에서 해고되고, 엔지니어에게 느낀 질투 등의 억눌린 감정들이 이렇게 마음껏 수다를 떨자 그 모든 억눌린 감정의 찌꺼기가 날아가 버리는 것을 느낀다. 그러자 장따민에게는 태양과 푸르른 하늘과 맑은 구름이 보인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의 궁핍, 굴욕, 난처함 등은 계속 지속되나 장따민은 자신의 ‘수다’로 생활을 조롱하고 생활을 즐기며 살아간다. 수다를 통해 표현되는 장따민의 생활에 대한 열정과 생존에의 갈망은 불완전한 인생과 마주하게하고 즐겁게 살아가게 한다. 장따민의 ‘수다’는 도시 서민의 생활에 대한 일종의 항의이며, 그의 ‘수다’는 개인적 즐거움이자 회색빛의 생활 속에서 빛을 되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작, 영화, TV연속극에서는 모두 생과 사에 대한 관조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었고, 이를 통해 산다는 것의 진지함이 드러날 수 있었다. 산다는 것에 대한 진지함은 원작의 뚜렷한 특징이다. 예컨대 장따민이 윈팡에게 밥을 권할 때 장따민의 생과 사에 대한 관조적 태도와 진지함이 잘 표현되고 있다. 장따민에게 ‘산다’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이고, 기회는 제한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사고사, 누이의 병사, 어머니의 치매 등은 모두 산다는 것과 대조되면서 산다는 귀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에서 누이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싼민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삶에 대해 회의할 때, 쓰민의 삶에 대한 미련을 통해 사는 일의 귀중함을 강조한다.
소설의 끝부분에 장따민은 어머니, 윈팡, 그리고 아들과 함께 향산에 오른다. 이때 아들 샤오수(小樹)가 ‘사람은 왜 사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윈팡은 이에 대해 ‘어떤 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막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특히 의미가 있다.’고 대답한다. 샤오수(小樹)가 다시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장따민은 ‘의미가 없어도 살아야만 한다. 죽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대답한다. 또 여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누가 너를 죽이려고 한다면 방법이 없다. 너는 죽을 수밖에 없다. 아무도 너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는 살아야 한다. 잘살아야 한다.
말장난 같은 이 대답에서 우리는 장따민과 같은 보통 서민들에게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가정생활의 자질구레한 일, 일상생활에서의 경제적 압력과 가족을 잃은 고통 등을 겪으면서 장따민은 더욱 성숙하고 자신과 용기를 키우게 된다. 소설의 결미에 장따민은 ‘내가 하늘을 위로하고 우뚝 서있는데 삶이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장따민은 아들에게 말한다.
네가 잘 살아가기만 한다면, 많은 행복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틈틈이 즐겨라.(只要你好好活着,就能碰到好多好多好多幸福. 我的儿子,你就没事儿偷着乐吧)
고난의 생활 속에도 행복이 있음을 믿고 그것을 추구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은 일. 이것이 장따민이 언제나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장따민은 수다로서 힘든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다. 장따민의 생활에 대한 진지함과 강인한 태도는 감동적이다. 장따민의 이야기는 사람에게 산다는 것의 힘듦, 그러나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의 이러한 정신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리우헝은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장따민의 그러한 강인함이다. 중화민족이 오천년의 역사의 격변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세계의 민족 속에 설수 있는 것은 국민의 그러한 강인함에 그 공을 돌릴 수 있다.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의 외재적인 형식은 희극이지만, 그 내면은 비극적이다. 유머적인 서술어조로 어쩔 수 없는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성공은 바로 비극과 희극을 결합한 것에서 비롯된다. 단순한 희극의 해학은 사람을 웃기게 하나 그것이 남기는 깊은 의미는 적고, 순수한 비극의 비장미는 사람을 비통하게 할 뿐이다. 비극과 희극의 융합만이 관중과 독자의 영혼을 감동하게 한다.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은 작가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좌절과 고난을 대함에 있어서 해학과 풍자가 강화된 성숙한 태도를 표현하고 있다.「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은 베이징 문화의 언어특색과 생활예술의 특징을 잘 포착한 작품으로 베이징 후통 따짜위엔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일과 낙관적인 생활태도를 흥미진지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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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파일전문(각주 제외):
도시와 문학: 좌이용밍, 하이즈, 왕안이, 그리고 리우헝 (박정희)
1. 중국현대문학
중국문학은 19세기 말부터(무술정변 전후) 새로운 변화를 잉태하고 발생시켰으니 이것은 바로 ‘고전’에서 ‘신’문학으로의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는 문학의 관념과 작품내용, 주제 및 예술기법 등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5․4 신문화운동 기간에 이르러 ‘질’의 비약을 이룬다. 이로써 중국문학은 ‘신문학’ 또는 ‘현대문학’의 시기로 진입하게 된다. 20세기 중국은 사회, 경제, 정치, 사상의 거대한 전환 과정에 처해 있었고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20세기 중국문학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각종 문학관과 유파 및 문학규범의 충돌, 융합, 흥망이 중국현대문학에 미친 영향이다. 그중에서 이미 1930년대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좌익문학’은 1940년대 마오저뚱의 ‘공농병(노동자, 농민, 병사) 문학’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게 된다. 이러한 문학의 형태 및 이에 상응하는 문학규범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그 영향력에 의해, 더 크게는 정치적 통제 역량에 의해 중국대륙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문학형태와 규범이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마오저뚱 시대의 종결로 인해, 이러한 일원화된 문학 구성 방식에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중국현대 작가인 펑즈(馮至)는 그들 세대의 작가는 19세기 서구 비판현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그들 세대의 작품에는 체홉, 모파상, 셀리, 하이네, 입센, 버나드 쇼 등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사회의 어둠을 폭로하기 위해서 19세기 비판현실주의의 소설에서 모범을 찾았고, 혁명에의 열정을 드러내기 위해 반항의 낭만주의에서 계시를 받았으며 구문학을 타파하고 새로운 방법을 추구하여 서구문학의 다양한 형식을 수용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중국현대문학의 기원에 대한 이해는 하나의 정치적 투쟁이기도 하였다. 후펑(胡風)과 펑시에펑(馮雪峰) 등은 5․4 신문학운동이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은 19세기 비판현실주의와 반항의 낭만주의이고 5․4 신문학은 이러한 근대 자본주의 문학의 최후의 지류라는 관점은 1950년대 주류계의 관점인 5․4의 신문학이 무산계급사상의 영도 하에 사회주의 현실주의 방향을 향해 전진한다는 관점과는 차이가 있었다.
중국현대문학은 현대민족국가의 주도적인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중요한 기지였다. 문학텍스트 이외의 모든 문학실천 특히 문학비평, 문학이론과 문학사의 건립과 운용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실천은 문학텍스트의 생산, 수용의 역사적 평가적 평가를 통제하고 사람의 감상활동을 지배함으로써 현대 민족국가의지에 복종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중국현대문학 속의 도시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먼저, 아름다운 산수로 인해서 중국고대 부터 시인들이 많이 출생했던 쓰촨 성 청두에는 현대중국에서도 특히 시인들이 많이 배출해내었다. 쓰촨성 청두 출신의 당대중국 시인 좌이용밍의 시세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리고 아직도 중국에서는 “내가 예전에 시를 좀 썼지요”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꽤 많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는 누구나가 다 시인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베이징 주변의 카페에서는 시낭송이 자주 열리고 많은 시인들이 베이징 대학 주변을 배회한다. 베이징은 주변인 예술가의 중심지 이다. 1980년대 학원시인의 대표적 인물인 하이즈와 하이즈의 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중국문학에는 베이징 특색을 표현해내는 경파(京派)와 상하이 특색을 표현하는 해파(海派)가 있다. 상하이의 작가 왕안이와 베이징을 묘사하는 리우헝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2. 좌이용밍: 글쓰기, 개인의 목소리
1980년대 중국 문화적 상황을 인성, 인도주의의 부활, 문학의 심미적 기능이 회복한 시대라 한다면, 1990년대 이후는 다양한 공생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의 문학은 五四 계몽운동을 계승하는 입장이었으나, 1980년대 말 그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중국 당대시가는 1980년대 초에 문화적 선봉의 역할을 담당하였다면, 1990년대 이후 당대중국문화의 주변적 위치에 머무른다. 시대와 문화의 적극적 참여자와 반영자의 역할을 한 중국당대시가는 문화적 내부의 변동에 의해 그 기능이 소실되어졌다.
1990년 이후, 당대중국시인의 현실은 역사가 개인에게 가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소비주의 시대의 유혹을 마주하고, 시인이 경험하는 내면은 애매모호하고 복잡하며 분열적이라 할 수 있다.
좌이용밍(翟永明)의 시는 창작초기에는 내면적 정서와 생명경험에 중점을 두어 표현하다가 점차로 현실적 생존상황의 묘사와 그 서술을 중시하게 된다. 좌이용밍의 글쓰기는 그 자신의 정신적 의미에서 세계를 ‘다시 명명하는’ 창조적인 힘을 가진다. 좌이용밍에게서 글쓰기는 시인자신의 창세(創世)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즉 “내가 목격하고 내가 창조한다”. 좌이용밍의 흑야(黑夜)의식은 이러한 ‘다시 명명하는’ 작업을 실현한 것으로 흑야 그 자체가 여성의 세계가 아니라, 그것은 여성이 창조한 세계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좌이용밍 시가의 특징인 ‘개인의 목소리’, 글쓰기 방식으로서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좌이용밍은 1980년대 중반, 시집 『여인(女人)』이 발표된 후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 시의 중요한 의의는 ‘개인의 목소리’로서 읽는 시로서의 중국시의 전통의 계승과 발전에 있다. 베이다오(北島), 수팅(舒婷) 등의 몽롱시의 개인의 목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중국문화는 5․4 지식인의 계몽정신을 계승한 개인담론으로서 집체담론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한다. 몽롱시인의 주체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역사적 주체로서 거대담론의 목소리이다. 1980년대 초 베이다오식의 회의와 분노, 수팅식의 우울과 힘찬 선율, 그들의 시는 계몽적인 의미에서 시대의 주류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들의 텍스트는 비장하고 격정적이거나 애절하나 슬픔은 없는 리듬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좌이용밍 시의 목소리의 특징은, 1980년대 시대담론의 배경 하에서 자기 시의 독특한 목소리로 이러한 시대배경과 거리를 두고 있다. ‘개인의 목소리’ 라는 시 특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시 본래의 언어, 리듬, 운율 등과 연결되어있다.
전체 중국당대 문학사(1949-)의 흐름을 이해하고 읽은 경험에 의하면, 중국 당대 어느 단계의 역사시기에는 문학의 직접적인 의도는 거대서사의 주류 담론를 세우는데 그 목표를 두었는데, 그것에 적응하든, 그것에 반대하든 결과적으로 이러한 목표에 종사하였다. 글쓰기의 의미를 이러한 ‘이미 설정되어진 의의’ 에 두고 스스로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글쓰기는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좌이용밍의 글쓰기 입장은 20세기 중국 상반기의 창작 경향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사회주의 시기 역사에 의해 단절되고 일체화를 향한 사회주의 시기 문화와 역사에 의해 제외되어졌다. 좌이용밍의 글쓰기는 20세기 상반기의 시인 쉬즈머(徐志摩), 빙신(冰心), 무단(穆旦)의 창작과 허치팡(何其芳), 펑즈(馮至)의 시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목소리는 좌이용밍의 시에서 표현되어진 것처럼 구체적이고 내재적인 개인의 목소리이다. 그녀의 시에서 우리들은 그 시대 주조음의 인용을 들을 수 있으나,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그녀 자신의 이해와 해석으로 변해져있다.
먼저, 나는 지금 소실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수리나무는 무엇을 말함인가? 「臆想」
이 시의 ‘나’는 몽롱시인들의 위대한 역사적 주체도 아니고, ‘상수리 나무’ 역시 여성의 문화적 신분의 대응물로서의 역활을 반복하지 않는다.『상수리나무에게(致橡樹)』등의 작품에서 수팅은 부드러운 여성, 강한 남성, 그리고 여성은 남성의 든든한 어깨가 필요하다는 등의 전통적인 성별의 역활을 답습한다. 좌이용밍은 20수 연작시 형태의『여인』에서 ‘나’의 탄생의 길고 어려운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미 뚜렷한 주체로 확립된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질문과 모색 끝에서야 구체적이고 생동적인 형상으로 그 자신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게 된다. 그리고 이미 관념에 의해 설정된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보여지고 관찰당하는 ‘타자’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좌이용밍의 시는 초기에는 독백식의 언어방식을 사용하다가 점차로 대화의 방법을 사용한다. 독백이 아닌 대화의 글쓰기는 좌이용밍의 시로 하여금 언제나 듣고 보는 이중적 시각을 가지게 하고, 시인이 자아를 분석하는 입장을 가지게 한다.
1980, 1990년대의 변화무쌍한 시단에서 좌이용밍이 자기의 창작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떻게 언어의 연금술을 모색할 것인가? 어떻게 자기내면의 리듬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자신과 만물이 교류할 때의 변화 중의 불변, 또는 불변 중의 변화를 의식할 것인가?‘변화’에 대한 인식은 좌이용밍의 글쓰기를 대상과 자기관찰의 이중적 시각 사이에서 진행하도록 하였다.
어느 날의 변화가 영원이 되고
어떠한 원인 때문인지는 불명확하네
한 면의 거울이 방을 가득 채우고
모든 변화는 피난처를 찾는다.「변화(變化)」
‘변화’라는 이 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두 시점을 가진 구조이다. 첫 번째 부분은 변화의 원인을 묻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구체적인 생활의 관찰 속에서 ‘반드시 변화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변화의 소리에 귀 기울임은 나를 이지적으로 되게하고
나를 생명이 서있는 위치와 거리를 둠으로서
나는 강한 존재인 척 한다.「변화」
글쓰기는 ‘생명의 위치와 거리를 둔 위치’ 에서 실현되고, 이것은 시인이 자기와 교류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이로서 한수의 시 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자아에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와 자아를 확인하는 목소리이다. 이로서 시는 이중적인 목소리가 서로 유동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좌이용밍 시 중에는 여성들 간의 대화가 자주 소재가 된다. 『여인(女人)』,『정안장(靜安庄)』시기에 그는 환상과 시간 속에서 자기와 소통하려하며, 후기의 시가에서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사랑, 죽음과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여인』연작시 중에 『모친(母親)』은 가장 감동적인 시편으로 생과 사라는 시각으로『모친』을 다시 읽으면, 좌이용밍 시의 주제는 시인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은 나를 맷돌 속에 두어, 내 자신으로 하여금 직접 자신이 빻아서 부수어지는 것을 보게 한다./ 아! 어머니, 내가 결국 침묵하게 되었을 때 당신은 이 때문에 기뻐하지 않았는지/ 내가 어떻게 아무 흔적도 없이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비밀은 / 당신으로부터 왔고, 나의 두 눈은 마치 두 개의 상처가 고통스럽다는 듯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살기위해 살아가고, 나는 멸망을 취함으로 자고이래의 애정에 대항하고/ 돌 하나가 버려진 후, 골수가 바짝 마른 것처럼 될 때까지, 이 세계
고아가 있었고, 모든 축복은 그 남겨진 것이 없음으로 드러났고, 그러나 누구든 가장 뚜렷하게 아는 것은/ 어쨌든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사람은, 태어남으로써 결국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모친」
『작은 술집의 상황이라는 주제(小酒館的現場主題)』라는 시 제목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현대적인 의사소통 공간이고, 즉흥적이고, 상황적이고, 우연적이고 개인적인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現場主題’ 는 시인의 자기의 경험에 대한 개괄적이고 예리한 파악이다. 글쓰기 과정 그 자체를 통해서 시인은 그녀가 표현하려는 사물을 포착한다.
갈색과 긴 밤
한잔의 진 토닉을 들고
주위의 여러 시끄러운 소리에다 더해진 주스
나 혼자 남겨두고 그 냄새를 참으라 하네.
여기에서 이미 설정되어진 대립되는 상황을 볼 수 있는데, ‘긴 밤’과 ‘한잔의 진토닉’ 그리고 ‘주위의 여러’와 ‘나 혼자’는 공간의 크고 작음을 의미하며, 시끄러운 환경과 고독한 개체로 내재적으로 대립된 존재를 의미한다. 이러한 존재의식은 전체 시에 계속되고, 전체 시의 주제에서 성별의 대립관계가 시인의 그 즉흥적 경험에서 다루어지고, 이로서 이 시의 시작에서의 긴장상태는 시인의 ‘거절’의 입장에 맞는 상황을 제공한다.
그러나 나는 다만 술을 가볍게 넘기며
너희들에게 이야기하길: “아무 것도 없어”
본문 중에서 성별과 신분은 불확정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복잡성을 가진다. 나, 여인, 여자아이, 여자 손님과 남자, 그들, 고급미학(美學上級), 너희들, 흑의를 입은 재판관 등으로 표현되어진 단어사이에는 불확정적이고 불완전한 대응의 관계로서 시인의 성별관계에서의 민감하고도 뚜렷한 입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시인의 ‘거절’이라는 확고한 입장은 단지 성별로 인한 억압만이 아닌, 어떠한 ‘규칙’에 대한 거절도 포함하며, 독자적이며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녀의 환각 속에서 그녀와 카드놀이를 하는 ‘죽음’의 형상 즉 흑의 재판관의 형상은 시에서 압박감을 생기게 함으로서 시 전체에 절망적인 긴장감이 깃들게 한다.
“어떤 것도 없어”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말하길: “없어”
“마지막이야” 그녀의 음조
마음으로는 그와 입술을 맞추네
푸른빛이 나는 말간 하얀 손
‘절망’을 버린다.
나는 ‘오래도록 같이함’으로 화답하나
그의 반응은‘불길함’
그러나 나의 판단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인식에 의하면
한 자살자의 포옹력으로
그의 움푹 내려앉은 두개골과 함께
모두 소모되어 버리다.
한 여성의 슬픔과 어쩔 수 없다는 생존의식이 집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좌이용밍의 생존한계에 대한 체득은 개인정신의 복잡한 면을 언급하고 있다. 시인은 그녀가 참여하는 일상생활과는 기묘한 거리감을 형성하는데 그녀는 ‘거절’이라는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함으로서 그 특유의 풍자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지킨다. 이 ‘거절’은 일체의 문화가 시인의 몸에 존재함으로 인한 억압에 대한 시인의 입장을 말한다.
여인은 손으로 그의 작은 펜을 들며
그녀의 마음을 들어 ‘거절’을 마신다.『작은 술집의 상황이라는 주제(小酒館的現場主題)』
좌이용밍의 상황식의 시가는 일상생활과 기억 사이의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건립하였다. 일상생활과 시인의 기억, 역사에 대한 상상 등, 1990년대 좌이용밍 시가의 중요한 부분으로 어느 정도 그녀의 시각의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제재의 다양화와 글쓰기 기술의식의 증가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여성 시인은 개념적 글쓰기에서 기술적 글쓰기로 강화되어야한다”고 말한다.
3. 하이즈: 중국신시의 가능성과 극단의 실험
하이즈(海子1964-1989)는 중국의 독자와 비평가에 의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당대중국의 선봉시인이다. 하이즈는 농촌출신으로 1980년대 베이징대학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하이즈는 몽롱시의 영향 하에 그의 시창작을 시작한다. 그러나 하이즈의 시에는 몽롱시인의 역사적 심각함은 없고 원시적 형태로 되돌아가려는 자유의지가 있다. 기원적 의미에서의 생명형태가 아닌 구조적 의미에서의 원형을 말한다.
‘밀밭(麦地)’ 의 이미지는 1985년「밀밭」에 처음 출현한다. ‘밀밭’의 이미지가 출현한 후 시인은 마치 자신에게 속한 단어를 찾은 것 같았다. 그 후 시인이 자주 사용하던 이 시어는 명확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는 밀밭(麦地), 대지(土地), 촌장(村庄), 고향(家乡), 양식(粮食) 등으로 이어지는 땅과 농사에 대한 원초적 신화를 다시 쓴다.‘麦地’와 ‘전원(田园)’은 다르다. 중국고대시 중의‘전원’은 시인의 은거의 장소이지 뿌리를 내리는 곳은 아니다. 하이즈는 고대시인의 문인기질에 대해서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취미로 변한다”고 비평하고, 자신은 “문인적 취미를 버리고 직접적으로 생명 그 자체에 주목한다. 이것이 중국시의 새로운 길이다”라고 말한다.
하이즈의 서정단시는 그의 장시를 초월한다. 하이즈는 중국 신시사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시인의 하나이다. 하이즈의 짧은 생애 중에 창작한 서정시는 이백 여 편에 달하고 장시는 7부에 달한다. 이러한 다산과 높은 질은 시인의 창작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이즈의 친구이자 시인은 시추안(西川)의 기억에 의하면, 하이즈는 매일 저녁 7시에 시작하여 밤을 새워 아침 7시까지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아침에 자고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에는 다시 계속해서 창작을 했다고 한다. 그의 집중적이고 긴장된 창작방식에는 강렬한 자아 소모적 특징이 있다.‘시는 생명리듬의 소모이고, 그만의 감정도 있다.’
밀밭/다른 사람이 너를 보고/네가 온화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나는 너의 고통스러운 질문의 중심에 서서/너에 의해 화상을 입고/나는 태양의 고통스러운 망망함 앞에서/밀밭/신비스러운 질문자여/내가 고통스럽게 너와 마주할 때/너는 내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없다/밀밭, 인류의 고통은/그가 발사한 시와 빛이다.「答复」
내일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말을 키우고 나무를 베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려 한다/내일부터 양식과 채소에 관심을 가지려한다/나의 집은 바다를 마주하고 화창한 봄날에는 꽃이 핀다/내일부터, 가까운 모든 사람과 연락을 하리라/그들에게 나의 행복을 말하리라/그 행복한 번갯불이 나에게 알려준다/나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리라/모든 강과 산에게 따뜻한 이름을 지어주리라/낯선 이여, 나도 너를 위해 축복하리라/너에게 찬란한 장래가 있기를 바라노라/너에게 끝까지 함께하는 연인이 있기를 바라노라/너가 속세에서 행복을 얻게 되기를 바라노라/나는 단지 사면의 바다를 바라보며 화창한 봄날에 꽃이 피기를 바라노라.「바다를 마주하고 화창한 봄날에 꽃이 피다(面朝大海,春暖花开)」
하이즈의 시의 가치는 그의 개인성으로 존재한다. 하이즈의 중국시를 본질적 구조로 환원하려는 노력은 승리와 실패로 평가할 수 없다. 릴케는“승리는 모든 것을 견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으나 하이즈는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하이즈는 “나는 반드시 실패하리라. 그러나 시는 태양으로서 반드시 승리하리라”라고 한다.
후기 창작에서 흑야(黑夜)를 자주 사용하는 시인에게는 그 자신의 체험이 있다. 깊은 밤에 창작하고 여명을 맞이하던 하이즈는 그의 생명의 최후의 시기에 내면의 흑야를 맞이하게 된다. 이 흑야는 어둠과 절망의 동의어가 아니고 내면과 외부 세계의 호응이고 생존 경험의 진면목을 드러냄이다. 이로서 시인이 흑야에서 노래 부르며 길을 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망설임 없이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을.
흑야는 대지 위에서 떠오르고/광명의 하늘을 가리고/수확 후의 황량한 대지/흑야는 너의 내부에서 떠오르다/너는 멀리로부터 오고, 나는 멀리 가려한다/요원한 노정은 이곳을 통과한다/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왜 나에게 위안을 주는가/수확 후의 황량한 대지/사람들은 일년의 수확을 가져가고/양식을 가져가고 말을 타고 갔다/땅에 남은 사람은 깊이 묻고 있다/쇠스랑이 반짝이며 빛을 내고, 짚무더기는 불에 타고 있다/벼무더기는 어두운 곡물창고에 있고/곡물창고는 아주 어둡고 아주 조용하고 아주 풍작이다/그리고 너무 황량하여 나는 풍작 중에서 염라대왕의 눈을 보았다/검은 빗방울과 같은 새무리/황혼에서 흑야로 날아든다/흑야는 아무 것도 없는데/왜 나에게 위안을 주는가/길을 가며/노래를 부르고/바람이 언덕을 지나가고/위에는 끝없는 하늘이 있다.「흑야의 헌시: 흑야의 딸에게 바치다(黑夜的献诗:献给黑夜的女儿)」
“태풍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고, 흑야인지 여명인지 상관없다”(「春天,十个海子」) 생존에는 통찰이 필요 없고 대지 자신으로 나타난다. 이 시에서 하이즈는 자신의 속세에서의 사명이 이미 다했음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는지? 하이즈의 운명에 대해 과장할 필요는 없고 더욱 평범한 사람의 생각으로 하이즈의 자학을 짐작할 필요는 없다. 한편의 시의 통일성은 정서의 통일성이다. 시의 이미지는 무엇을 서술하느냐가 아니라 서로 비추어 어울림에 의해서 정서를 표현한다. 감정이 시로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감정일 뿐이다.
현대 중국어를 사용하여 창작한 시는 격률시의 전통이 없기 때문에 운율의 사용과 절을 나누는 규정이 없다. 그래서 중국신시의 창작은 어떤 의미에서 실험작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결핍으로 이해하여 불행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행운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적 정해진 구속이 적은 신시창작에 있어서 시인은 자신의 시어에 더욱 전념할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독특한 어휘, 리듬과 이러한 과정 중의 실패라는 댓가를 지불해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하이즈의 서정시는 강렬하여 기억에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하이즈 서정시의 리듬은 언제나 정확하게 그가 표현하려는 정서와 감정에 부합한다. 이 점에서 하이즈의 어휘를 답습하려는 모방자도 배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편의 시의 리듬은 반드시 시인의 내심의 리듬과 장단이 맞아야하고 시인이 선택한 시어도 필연적으로 이 리듬을 위해 준비되기 때문이다.
4. 상하이 취향(海派)의 문학: 왕안이
모든 도시는 그의 서술자에게 언어, 경험과 서술을 제공해준다. 중국 현대문학에서 상하이(上海)는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그 자신의 위치와 의의가 있었다. 중화민국 초기의 원앙호접파(鴛鴦胡蝶派) 소설과 근대 상하이의 흥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1930, 1940년대 신감각파(新感覺派) 무스잉(穆時英) 등의 그 신선한 감각과 현대적 기교는 중국문학전통과 혁명적 단절을 일으키고, 이러한 새로운 문학경험은 현대도시 상하이가 부여한 것이고, 그것은 단지 상하이에서만 생산되어졌다. 1940년대의 장아이링(張愛玲)은 상하이 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상하이 시민의 일상생활을 그려냈다.
1980년대 이후 상하이는 마치 묻힌 역사가 다시 발굴되어지는 것처럼, 문학에서 새롭게 표현되어지게 된다. 왕안이(王安憶)는 1980년대에『남성과 여성, 여성과 도시(男人與女人, 女人與城市)』에서 여성과 도시와의 모종의 연맹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고, 1990년대『장한가(長恨歌)』,『홍콩의 정과 사랑(香港的情與愛)』에서 여성의 생활과 심리의 세심한 관찰로서, 상하이와 홍콩 이 두 도시의 역사적 변천과 문화적 함의를 전개하고 있다.
왕안이와 1980, 90년대 문학주류와의 관계, 그리고 1990년대 이래 중국문단의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인 ‘상하이와 현대성 담론’ 속에서 왕안이의 상하이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서 왕안이라는 작가의 글쓰기 이상과 추구를 읽어보고자 한다.
왕안이는 ‘문화혁명’을 경험한 지식청년 작가이다. 1980, 90년대의 중국소설문학의 중요한 흐름은 상흔문학, 반성문학, 뿌리찾기문학, 지식청년문학, 실험소설, 신사실주의 소설 등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왕안이의 창작은 이러한 흐름 중에서 비교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주류적 입장을 가진다고 할 수 있지만 그녀의 작품은 문학의 주류담론이 중국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때 그녀는 긍정적인 태도로 중국문화를 이야기한다. 또한 주류담론에서 중국문화와 역사에 긍정적으로 호응할 때 왕안이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녀는 이러한 ‘주변(邊緣)’의 입장을 “산밖에 산이 있고,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로 설명한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문혁’에 대해 비판하고, ‘문혁’과 당시의 역사를 반성하는 자세를 취할 때, 왕안이는『유실(流逝)』를 쓴다. 그녀 역시 ‘문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러나 일상생활에 그 중심점을 두었다. 당시에 동시대인들이 ‘문혁’이 박탈한 것에 대해 쓰고 있을 때, 그녀는 ‘문혁’에 대한 망연자실한 성찰을 표현한다. 상흔, 반성의 문학조류 속에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왕안이가 추구한 것은 오히려 또 다른 어떤 가능성, 즉 그 재난 속에서 아마도 있을법한 ‘수확’이었다. 어우양돤리(歐陽端麗)의 일상생활의 변화를 통해 그 ‘재난’이라 불리는 시대에 있었을 어떤 ‘수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작품에서 언급하기를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었다. 그것은 결코 헛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왕안이 글쓰기의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글쓰기 과정 중의 구성과 해체의 서술방식을 통해 그 글쓰기 과정 중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확정성의 서술은 문화의 규정된 언어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녀는 이러한 불확정적인 전복적 서술방식을 취한다. 왕안이 창작에서는 반어적 서술 그자체가 소설의 내용과 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반어적인 서술은 『아저씨의 이야기(叔叔的故事)』에서는‘성별’입장에서의 전복과 반항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는 서술자 ‘나’의 성별에 대해서 언급이 전혀 없는데, 작가가 의식적으로 은폐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문학의 전통적 서술방식과 ‘아저씨’ 세대의 문학에서 서술 언어를 통제하는 것은 대다수의 남성이다. 그러나『아저씨의 이야기』는 여성작가가 쓴, 여성시각의 서술자 ‘나’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기에 이미 ‘기존의 서술규칙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아저씨의 이야기』에서 왕안이의 반어(反諷)적 서술은 서술자의 관점에 따라 한 가지 내용에 여러 종류의 다양한 서술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이러한 관점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복잡한 관계를 만들고, 이러한 서술은 각자의 서술이 포함하는 의미에 대해 서로 의심하는 서술적 관계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확정적인 서술로 전개될 때, 과연 하나의 이야기의 진실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왕안이는 확정적인 서술에 대한 반어적인 서술로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회의를 던진다. 작품 중의 ‘나’는 원래 ‘아저씨’의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그 확정적인 ‘진실’이 사실은 단지 ‘서술’의 진실 일뿐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상하이와 현대성 담론’에서의 상하이에 대한 글쓰기에서는 사회주의 혁명 시기의 역사를 비현대적인 요소로 간주하고 연구의 범위에서 제외시키는 추세인데, 그녀는 사회주의 혁명시기의 상하이를 그려내고 역사적인 흐름에서 빠트릴 수 없음을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상하이와 현대성담론’의 많은 연구들이 상하이와 서구세계와의 충돌 부분에만 주목한다면 왕안이는 상하이의 기억과 현대의 상하이의 연결과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왕안이는『장한가』에서 그녀의 상하이에 대한 모든 경험과 상상을 총괄하였는데, 왕안이의 도시 상하이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녀는 이러한 경험을 객관화 하였다. 왕안이는 왕치야오(王琦瑤)라는 여인을 발견해냈고, 왕안이는 이 여인의 일생을 통해서 상하이의 역사를 쓴다. 왕치야오의 역사는 바로 상하이의 역사였다. 왕안이는 주류담론 속에서의 상하이의 형상을 버리고, 상하이의 민간 형태 속으로 들어가서, 꿈처럼 번화했던 상하이를 그려내려고 하였다. 1980년대 이후 상하이는 마치 40여 년 전의 번화함을 기억하듯 모든 것이 급격히 변하지만 이러한 도시의 변화 속에서도 상하이 정신은 변하지 않고 그 정신은 늘 불변으로 부단히 변화함을 의미한다.”사회주의 시기에도 “상하이의 바탕색은 퇴색하지 않았고 그것은 농탕의 창문커텐 뒤에 숨어있었을 뿐이고 상하이는 상하이다”라고 한다. 왕안이는 상하이 여인 왕치야오의 일생을 통해서 상하이의 영혼과 정신의 핵심을 찾고자 했다.
왕안이는 자신의 모든 글쓰기 경험을 기록한, 그리고 자신의 모계 가족사를 추적함으로써 ‘자기’의 근원을 찾는 작품인『기실과 허구: 세계를 창조하는 방법의 일종(紀實與虛構:創造世界方法之一種)』의 서문에서 말하길, “아이인 그녀는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시간상의 위치는 언제이며, 공간상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 문제는 듣기에 심오하고 아주 심오하였는데, 사실 본질적인 문제는 즉 그녀가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되고, 또 그녀주위의 사물과 어떤 관계로 자리 잡고 있는가이다. 아이인 그녀가 계산의 방식으로 종적과 횡적인 관계의 문제로 나누자 일체는 아주 간단해졌다.” 이것은 왕안이 창작의 본질적인 문제의식이다. 상하이의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왕안이 그녀의 뿌리 없는 가족사 때문에, 왕안이는 상하이라는 이 도시에서 정신적으로 거리감을 가진 거주자였다. 이 역사가 없는 거주자는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모색하게 된다. 그래서 왕안이는 글쓰기를 통해서 모계와 부계가족의 역사를 추적하게 되고, 자기정체성의 역사적 근거를 추구하게 된다. 즉 그녀가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의 문제에 대한 고찰을 한다. 그리고 왕안이 그녀는 그녀 주위의 사물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의 문제를 고찰하게 되는데, 즉 왕안이는 개인의 기억과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대도시 상하이와의 관련성을 서술한다. 상하이가 가지고 있는 기호와 의의가 어떻게 왕안이의 기억과 생명 속에 들어오게 되는지, 대도시와 한 여성의 깊은 관계가 어떻게 창작 속에서 성립되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왕안이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전개되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베이징 취향(京味)문학
리우헝(刘恒)의「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을 통해 본 베이징의 서민문화
1980년대의 ‘京味’소설에 표현된 베이징은 민족문화의 발굴과 재 건립이라는 중국인들의 역사적 추구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베이징에 대한 향수적 글쓰기가 유행하게 된다. 1990년대 이후 베이징에 대건설붐이 일어나게 되면서 베이징 문화의 상징이었던 후통(胡同), 따짜이먼(大宅门), 사합원(四合园), 따자위엔(大杂院)이 사라지고, 그 건축공간이 지니고 있던 문화적 기억 또한 사라져가게 되었다. 베이징에 대한 향수적 글쓰기는 이러한 현실적 변화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글에서 분석할 리우헝(刘恒)의「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贫嘴张大民的幸福生活)」은 베이징의 변화, 즉 후통이 철거되고 아파트로 이주하는 서민의 생활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의 서민인 장따민(张大民)은 구러우(鼓樓) 부근 후통의 두 칸짜리 방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다섯 형제와 함께 살고 있다. 작가는 이들 6명의 식구가 좁은 공간에서 함께 거주하는 열악한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은 TV 연속극, 영화, 라디오 연속극, 만화, 평극(評劇) 등 다양한 문화형식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이 작품은 영화「틈틈히 즐겨라(没事儿偷着乐)」(杨亚洲 감독, 冯巩 주연, 1998)와 TV연속극「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杨冠华 주연, 1999)로 제작되어 중국에서 상당한 호평을 얻었던 것으로 이야기된다. 영화「틈틈히 즐겨라」는 저명한 샹성(相声) 연기자 펑공(冯巩)의 고향인 텐진(天津)을 배경으로 텐진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텐진 사람들에게 환영 받았다. 특히 펑공(冯巩)은 장따민을 연기하면서 언어 마술사로서의 자신의 내공을 십분 발휘하여, 그해 중국 영화제(金鸡奖)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TV 연속극「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이야기」역시 중국 시청자들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 속편이라 할 「아름다운 집(美麗的家)」(安战军 감독,杨冠华 주연, 2000)이 설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한다. 속편에서는 장따민이 아파트로 이사한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작품이 영화와 TV연속극을 통해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게 되자 화예출판사(華藝出版社)에서는 새해맞이 총서로 그 단행본을 출판하였는데, 그것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후반은 문학의 주변화가 이미 심각하게 진행된 시기였다. 당연히 문학작품의 영화 제작이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 없는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작품이 대중매체의 생산방식을 통해 제작되고, 전에 없던 높은 호응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어떠한 힘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인가?
그 출발점이 되는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작품은 베이징의 서민인 장따민의 개인사, 즉 결혼, 아들의 출생, 직장에서의 해고, 그리고 후통의 철거와 아파트로의 이사 등과 같은 생활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 장따민과 그의 동생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장따민은 낙관적이고 열정적이고, 유쾌한 성격의 인물이다. 그는 부친이 보온병 공장에서 일하다 보일러 폭발사고로 사망한 후 수다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원래 멍청하고 동작이 굼뜨던 그의 이러한 변화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내적 고통의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장따민의 수다는 힘든 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이자 그의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인공의 수다와 풍자, 그리고 낙관적인 태도는 기존의 리우헝 작품을 관통하던 무거운 분위기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리우헝은 이 소설에서 구어체를 사용하여 가장 실제에 가까운 베이징 서민의 생활을 표현하고자 하였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베이징식 정신문화가 생존의 최소조건조차 결여된 후통 따자위엔의 서민들에게 중시되거나 계승되기는 어렵다. 그런데「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은 분명한 경미(북경특색이라는 뜻,京味) 문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경미 문학의 특징이 분명한 언어형식과 경미 문화를 풍격으로 하는 풍부한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탕홍펑(唐宏峰)은 이렇게 단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경미 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언어라는 뚜렷한 표지 외에 일종의 풍격과 유파로서의 경미 문화가 갖는 보다 넓은 내용들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경미 문화의 핵심에는 ‘세속적’인 것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세속적 성격은 철저하면서도 완전한 자질구레한 일상사가 된다. 생활할 곳이 없는 상황, 더블베드를 배치하는 일, 가난과 싸움 등의 일상의 세속적 생활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은 일 등은 경미 문화의 특색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소설「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 이를 영화로 제작한「틈틈히 즐겨라」, 그리고 TV연속극「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을 중심으로 원작 소설이 대중문화의 방식으로 제작된 후 어떤 효과를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베이징문화의 특성과 연관하여 이들 작품 속에서 베이징(北京)언어의 특색인 ‘쏴핀쭈이(수다, 耍贫嘴)’, ‘칸따샨(侃大山)’, 유모어 등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베이징 사람은 언변에 능하다. 베이징 사람은 말에 뛰어나 특별한 언어재능과 유모어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라오베이징 사람들은 언어능력이 뛰어나고 구변이 출중하여, 이전에는 「베이징 뺀질이(京油子)」, 「수다(耍贫嘴)」라고 불리어졌다. 샹성(相聲)예술의 발전은 바로 이 재능의 산물이다.’‘「칸(侃)」은 베이징에서 아주 중요한 능력이자 자랑스러운 자산이다.’ 그리고 ‘베이징 언어능력의 또 다른 특징은 유머다’.
경미 문학작품에서는 베이징 사람의 언어유희에 대해 많이 언급되고 있다. 경미 문학작품 속의 베이징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말하느냐에 중점을 둔다. 즉 어떤 의미를 표현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면 말을 폼 나게 하느냐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베이징 사람들의 말에는 쓸데없는 말이 첨가되게 마련이다. ‘베이징 뺀질이(京油子)’와 ‘수다(耍贫嘴)’는 바로 이런 베이징 사람에 대한 가장 적절한 개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베이징의 언어특징이 지리적 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즉 베이징의 겨울은 춥고 길기 때문에 집안에서 소일거리로 ‘수다’가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베이징 사람들의 ‘수다’ 방식도 변하게 되어, 그 ‘수다’에 여러 가지 생활의 정보와 시사적 내용이 첨가되어진다. 이로서 1980년대 이후로 베이징에는 ‘칸따샨(侃大山)’이라는 언어가 유행하게 된다.” ‘칸따샨(侃大山)’은 사실상 ‘한담’이지만 ‘칸따샨(砍大山)’으로도 쓰여지고 월급, 방문제, 물가 등 각종 생활정보가 첨가된 ‘수다’ 를 총칭한다. 단순한 ‘수다(耍贫嘴)’와 ‘칸따샨(侃大山)’은 비슷하지만 그 차이를 논한다면, ‘「칸(侃)」은 여러 가지 정보의 집합으로 여러 가지 의견을 발표하고 여러 가지 사상을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베이징 언어의 특색으로 ‘티아오칸(调侃)’을 꼽기도 한다. ‘티야오칸(调侃)’은 수다에 풍자와 조소적 색채가 더해진 것을 말한다. 장따민의 ‘수다’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베이징의 연예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외모는 별로이지만 유머 감각이 있고 어떠한 말도 꺼리김 없이 쏟아놓는 말재주 뛰어난 호방한 풍격의 남성 연기자가 인기가 있다. 그래서 장따민의 역할을 맡은 배우도 영화에서는 펑공(冯巩)과 TV연속극에서는 양관화(杨冠华)가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외모가 그다지 출중한 인물은 아니지만 대체로 소탈하고 호방한 풍격의 사나이들이라 할 수 있다. TV연속극에서 윈팡이 결혼 전에 사귀었던 상하이 남성은 겉모습이 단정하고 말이 그다지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중국인들의 관념에서는 보편적으로 베이징과 상하이 남성을 사나이(漢子)와 샌님(小生)으로 구분하고 있고, 대중매체에서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장따민이 생기발랄하게 사람 앞에 등장하여 서민적 유머로 베이징 특유의 ‘수다’(耍贫嘴)를 떨기 시작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장따민의 수다는 베이징 문화의 특징으로 베이징인의 생활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낙관적인 생활태도는 진정한 베이징문화의 특색이다. 장따민은 어렸을 적부터 생활환경이 빈곤하고,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하층계급의 서민들이었다. 따라서 그의 풍자는 품격과 격조를 갖춘 고상한 것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베이징 언어문화의 특성인 통속성과 유머가 담겨있다. 장따민의 수다 속에는 생활에 대한 풍자보다 생활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어져 있다. 장따민의 아내 리윈팡(李云芳)이 결혼 전 사귀던 타월공장의 직장동료였던 엔지니어는 미국으로 가면서 그녀를 차버린다. 이때 리윈팡이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자, 장따민은 그녀에게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설득한다. 그것을 설명하는 비유는 가장 통속적인 것으로, 간단하게 연령과 음식의 계산법과 금전가치 방법을 예로 든다.
윈팡, 내가 너를 대신해 계산을 해볼게, 네가 밥을 안 먹으면 매일 3원이 절약돼. 이미 9원이 절약됐어. 네가 만일 다시 9원을 절약하면 화장을 해도 될 거야. 너 무슨 말인지 알겠니? 이 일은 누구한테도 이득이 없어. 네가 굶어 죽으면 너의 엄마는 단지 18원이 절약될 수 있을 뿐이야. 너는 유골함이 얼마인지 알아? 우리 아버지 유골은 항아리에 담았는데도 30원이 들었어! 너는 아주 예쁘니 80원 짜리 유골함을 사지 않고서야 너를 어떻게 담을 수가 있겠니! 이렇게 거의 1개월을 먹지 않으면 돼. 너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이 일은 마무리가 지어질 것이야. 네가 아직도 너를 담을 유골함을 살 돈도 벌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윈팡, 시위엔의 샤오산의 할머니는 아흔여덟 살이라고 하더라. 너는 스물셋, 아직 칠십오 년을 더 살아야 아흔 여덟이 돼. 아직 칠십오 년의 밥이 네가 먹기를 기다리고 있어. 지금 먹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니! 내가 너 때문에 부끄러워 죽겠어! 내가 너 대신 밥을 먹어줘도 돼.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니? 신을 신고 얼른 내려와, 윈팡, 밥 좀 먹어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밥이란다. 좀 먹어라.”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더욱 생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긴 설득에 이어 다음과 같은 말이 더해진다.
윈팡,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밥이고, 밥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바로 국수이고, 국수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속에 든 마늘이다. 마늘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너보다는 예쁘지 않다. 윈팡, 제발 밥 좀 먹어라.
이러한 장따민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인 윈팡이 결혼을 하자고 한다. 이렇게 그녀를 사모하던 장따민의 꿈은 이루어져 윈팡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을 하려고 하지만 가장 큰 방문제가 남아 있다. 두 칸의 방에 여섯 식구가 살고 있는데, 어디에 신혼방을 꾸민단 말인가? 가족들의 양해를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장따민은 자신의 수다로 자신의 결혼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양해를 구한다. 소설에서 장따민은 보온병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자신의 직업적 특성을 발휘하여 끓는 물을 보온병에 담아야 하는 것으로 결혼을 비유한다.
한 달 후 나는 결혼을 한다. 원래는 석 달 후에 하기로 했지만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다. 물이 갑자기 끓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하여 갑자기 끓게 되어 보온병에 담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끓는 물을 보온병에 담고 두껑으로 닫아야만 마음이 놓인다. 그런 후 차를 마시든 발을 담그든 마음가는대로 하면 된다. 무슨 말인지 알지? 이것은 나의 첫 결혼이다. 나는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생각할수록 잠이 오지 않았는데, 결혼할 사람은 있고, 바로 문 앞에 서있지 않느냐. 문제는 나에게는 신방을 차릴 데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것을 ‘봄이 왔다. 봄이 왔으니 농작물을 심어야 하고, 가을에 거두어들어야 겨울에는 편안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지금 봄이 왔으니 결혼을 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자신의 결혼의 당위성을 설득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좁아터진 두 칸의 방에서 동생 싼민이 장따민에게 결혼을 한다고 이야기할 때에도 소설에서는 ‘나의 물도 끓는다. 나도 보온병에 담아야한다’(我的水也开了,我也要灌暖壶)라고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형, 나에게도 봄이 왔어’ 라고 말하며, 형에게 자신들의 신방을 꾸며달라고 한다.
윈팡의 전 남자친구가 미국에서 잠시 귀국하여 윈팡 공장의 직원을 식사에 초대하면서 윈팡도 초대하게 된다. 그녀는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장따민은 흔쾌히 가라고 한다. 그러나 장따민은 마음이 불안하여 망설이다 결국 그녀가 초대받은 고급 음식점에 몰래 뒤따라 가게 되고 음식점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훔쳐본다. 그리고 장따민은 일생의 최대 위기와 마주하게 된다. 서른여섯 해를 열심히 살아왔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늦게 집에 돌아오니 그 엔지니어가 윈팡에게 준 달러가 거실의 탁자위에 놓여있다. 모두에게 주는 선물 속에 넣었기 때문에 윈팡도 집에 와서야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 일로 부부는 싸움을 하게 된다.
뒷날 돈을 돌려주기 위해 장따민은 바로 그날 미국으로 떠나는 엔지니어와 잠시 만나게 된다. 전날의 기가 죽은 모습과는 다르게 장따민은 그의 허풍과 수다로 엔지니어를 어찌할 줄 모르게 한다. 그 모습을 소설에서는 ‘입, 목소리에서 개가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멍멍멍멍하고 그 자신조차 무엇이라고 짓어대는지 몰랐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따민과 그 엔지니어가 징륜(京伦)호텔의 로비에서 만났을 때는 비행기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엔지니어는 장따민이 돌려준 돈 봉투를 받고서는 계면쩍어 얼굴을 붉히면서, 시계를 보며 우물쭈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다. 장따민에게는 그의 이런 모습이 의외였다. 그러자 장따민의 조소와 수다가 시작된다.
미국에서 생활하신 지가 짧은 세월은 아니지요. 미국인은 사람도 아닙니다. 항상 우리 중국 사람을 시켜 접시를 닦게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중국인이라고 하면 접시닦이를 생각나게 하지요. 영어 단어에서는 중국을 도자기(瓷器)로 부른다는데, 진짜입니까? 중국어에서는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르는데, 나라면 됐지 아름답기까지, 그들을 너무 치켜세워요! 당신은 지금 미국인이니 잘 알겠지요. 그 곳은 아름답습니까? 사람이 살만한 곳입니까? 그들이 우리를 도자기라고 부르니 우리들은 미국을 접시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엔지니어가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는데도, 그의 말은 끝없이 계속된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그 수다는 멈출 줄 모른다.
내가 문을 열어드리지요. 비행기 타서 조심하세요. 지난주에 콜롬비아에서 비행기가 떨어져서 사람이 타서 숯처럼 되었다고 합디다. 미국에 가면 자주 연락합시다. 당신이 에이즈에 걸리면 나를 찾아오면 됩니다. 내가 어떤 노인을 알고 있는데, 고약을 배꼽에 부치기만 하면 어떤 병도 나아요……뉴욕에 가면 길거리에서 조심하세요. 누가 당신의 귀구멍에 총을 쏠지도 모르니까요. 하느님이 당신을 보호하시기를, 아멘!
그리고 엔지니어가 탄 차가 떠나자 비로소 그는 입을 다문다. 여동생 쓰민이 죽고, 직장에서 해고되고, 엔지니어에게 느낀 질투 등의 억눌린 감정들이 이렇게 마음껏 수다를 떨자 그 모든 억눌린 감정의 찌꺼기가 날아가 버리는 것을 느낀다. 그러자 장따민에게는 태양과 푸르른 하늘과 맑은 구름이 보인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의 궁핍, 굴욕, 난처함 등은 계속 지속되나 장따민은 자신의 ‘수다’로 생활을 조롱하고 생활을 즐기며 살아간다. 수다를 통해 표현되는 장따민의 생활에 대한 열정과 생존에의 갈망은 불완전한 인생과 마주하게하고 즐겁게 살아가게 한다. 장따민의 ‘수다’는 도시 서민의 생활에 대한 일종의 항의이며, 그의 ‘수다’는 개인적 즐거움이자 회색빛의 생활 속에서 빛을 되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작, 영화, TV연속극에서는 모두 생과 사에 대한 관조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었고, 이를 통해 산다는 것의 진지함이 드러날 수 있었다. 산다는 것에 대한 진지함은 원작의 뚜렷한 특징이다. 예컨대 장따민이 윈팡에게 밥을 권할 때 장따민의 생과 사에 대한 관조적 태도와 진지함이 잘 표현되고 있다. 장따민에게 ‘산다’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이고, 기회는 제한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사고사, 누이의 병사, 어머니의 치매 등은 모두 산다는 것과 대조되면서 산다는 귀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에서 누이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싼민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삶에 대해 회의할 때, 쓰민의 삶에 대한 미련을 통해 사는 일의 귀중함을 강조한다.
소설의 끝부분에 장따민은 어머니, 윈팡, 그리고 아들과 함께 향산에 오른다. 이때 아들 샤오수(小樹)가 ‘사람은 왜 사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윈팡은 이에 대해 ‘어떤 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막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특히 의미가 있다.’고 대답한다. 샤오수(小樹)가 다시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장따민은 ‘의미가 없어도 살아야만 한다. 죽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대답한다. 또 여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누가 너를 죽이려고 한다면 방법이 없다. 너는 죽을 수밖에 없다. 아무도 너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는 살아야 한다. 잘살아야 한다.
말장난 같은 이 대답에서 우리는 장따민과 같은 보통 서민들에게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가정생활의 자질구레한 일, 일상생활에서의 경제적 압력과 가족을 잃은 고통 등을 겪으면서 장따민은 더욱 성숙하고 자신과 용기를 키우게 된다. 소설의 결미에 장따민은 ‘내가 하늘을 위로하고 우뚝 서있는데 삶이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장따민은 아들에게 말한다.
네가 잘 살아가기만 한다면, 많은 행복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틈틈이 즐겨라.(只要你好好活着,就能碰到好多好多好多幸福. 我的儿子,你就没事儿偷着乐吧)
고난의 생활 속에도 행복이 있음을 믿고 그것을 추구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은 일. 이것이 장따민이 언제나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장따민은 수다로서 힘든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다. 장따민의 생활에 대한 진지함과 강인한 태도는 감동적이다. 장따민의 이야기는 사람에게 산다는 것의 힘듦, 그러나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의 이러한 정신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리우헝은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장따민의 그러한 강인함이다. 중화민족이 오천년의 역사의 격변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세계의 민족 속에 설수 있는 것은 국민의 그러한 강인함에 그 공을 돌릴 수 있다.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의 외재적인 형식은 희극이지만, 그 내면은 비극적이다. 유머적인 서술어조로 어쩔 수 없는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성공은 바로 비극과 희극을 결합한 것에서 비롯된다. 단순한 희극의 해학은 사람을 웃기게 하나 그것이 남기는 깊은 의미는 적고, 순수한 비극의 비장미는 사람을 비통하게 할 뿐이다. 비극과 희극의 융합만이 관중과 독자의 영혼을 감동하게 한다.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은 작가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좌절과 고난을 대함에 있어서 해학과 풍자가 강화된 성숙한 태도를 표현하고 있다.「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은 베이징 문화의 언어특색과 생활예술의 특징을 잘 포착한 작품으로 베이징 후통 따짜위엔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일과 낙관적인 생활태도를 흥미진지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하겠다.
하자(문학과 도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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