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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식의 지도'를 제안하며


'지식의 지도'를 제안하며


책에 대한 이야기들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아마도 책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을 것 같다. 즉 책에 대한 책, 책읽기에 대한 책이라는 일종의 메타 책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했다는 얘기이다. 다른 동기로는 이런 자아성찰 외에도 자기도취라는 면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ぼくはこんな本を?んできた, 立花隆, 1995)>와 같은 자신감 가득한 제목의 책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지적 성취를 공유하고자 하는, 더 나아가 자신을 어떤 형태로든 과시하려는 마음이 없지는 않은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지적 허영은 다른 물질적 허영이나 권력지향적인 모습들에 비하면 나름대로 바람직하다. 부자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기 십상이지만 지적인 사람은 괴롭힐만한 대상이 그리 많지 않다. 허투르게 과시하려다간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이 메타 책이라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타입이 있다. 하나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책을 정리한 책이다. 먼저 책에 관한 이야기로서의 책을 보자. 이런 책은 책의 역사, 책을 만드는 방법, 책이 문화에 끼친 영향, 책을 읽는 이유, 책을 읽다가 생긴 에피소드 등등에 대한 것들이 적혀있다. 말하자면 대부분 '이야기 소재'로서의 책이고, 매체로서의 책에 대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책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서가에 꽂힌 책

책에 관한 책으로서 정말 종류가 많은 것은 바로 책읽기를 도와주는 지식도우미로서의 책이다. 쉽게 말하자면 독서감상문 모음이다. 이러한 책들은 먼저 읽은 선배가 이제 곧 읽을 후배들에게 부연설명을 해주거나 자신의 의견을 다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책의 편집 방침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주로 교양서적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하거나 한 개인의 서평모음집과 같은 형태를 띤다.

개인의 서평모음집이라는 것은 소위 도서평론가(reviewer)들이 적은 서평들을 모은 것들이 주된 것이지만 이런 것들이 과연 묶일만한 것인가라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그 도서평론가가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 안에도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있고,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겠다. <장정일의 독서일기>(1995~)의 경우 장정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좋아할만한 책일 것이고 문화집단 퍼슨웹에서 만든 <대담한 책읽기>(2004)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책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담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소 색다른 기획의 책이다. 박지원의 문집인 <연암집(燕巖集)>에는 박지원이 다른 북학파 동지들의 책들에 적어준 서문을 모아둔 편(2008년 현재 <나는 껄껄선생이라오>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이 있고 반대로 김석희의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1997)처럼 역자 후기만을 묶어서 책을 낸 특이한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서평모음집이라는 것도 간단치는 않다. 개인 취향에 맞춰 읽으시라. (참고로 연암집은 박지원이 편집한 것이 아니니, 박지원에게 서문을 모아서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나 하는 오해는 하면 안 된다. 연암집은 골수 친일파인 박영철이 간행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대담한 책읽기
나는 껄껄선생이라오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

좀 더 정치적인 것은 '교양'이다. 교양이라는 것은 규정하기도 모호할 뿐 아니라 교양을 모를 경우 '교양 없는 자'가 되기 때문에 꽤나 폭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교양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개인의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어떤 메타 책들은 교양을 규정하곤 하여 읽는 이를 피곤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런 규정을 위해 만들어지곤 한다. 대표적인 것들이 대학별 권장도서 모음집이나 해제집이다. <권장도서 해제집>(서울대), <연세필독도서>(연세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서강대) 등 많은 학교에서 자신들의 교양서적을 규정하여 설명을 붙인 책을 내놓는다. 한국인들의 서울대병 때문에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은 출판 마케팅에서 꽤 영향력 있는 키워드로 행세하고 있다. 이런 브랜드를 이용하여 교양을 강요하는 제목의 책으로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2005)이라는 시리즈까지 있으니 교양이라는 말이 주는 폭력성이란 은근히 강하다.

교양
권장도서 해제집
아무도 읽지 않는 책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교양이다. 각 분야에서 천재들이 거시적인 것을 규정해나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여러 사람이 협업을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개인은 더욱 자신의 분야만을 파고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지적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자기분야 외에는 잘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편협한 시야를 벗어나 자신과 사회 전반에 걸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려면 교양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에 논술열풍이 가세하여 지금 서점가에는 교양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넘쳐난다. 아니 솔직히 말해 논술열풍 때문에 교양이 넘쳐난다.

고교 독서평설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교양

개인적으로 지금까지의 교양론이 가졌던 문제라고 하면 교양은 어떤 것인가를 규정하기보다는 교양은 무엇인가를 규정하려 했다는 점을 꼽고 싶다. 대개의 교양론은 교양을 규정해놓고 그것들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달아왔다. 그러한 주입식 교양론도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그것에는 '나'가 빠져있다. 나와 공감할 수 있고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지식이야말로 교양이다. 나를 감복시킬 수 없는 지식이라면 그것은 교양도 무엇도 아니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데 그것이 무슨 교양이겠는가. 그렇다면 교양을 나열하는 것 보다는 교양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지식의 지도'를 제공하고 그 지식의 지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양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 교양은 또 다른 교양으로 이어지며 이렇게 자연스러운 교양의 흐름을 따라갈 때 나는 어느새 교양인이 되는 것이다.

'지식의 지도'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 교과서와 백과사전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 교과서라는 것은 참으로 멋진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세상에서 가장 쓰레기 같은 책이 교과서라고 생각했건만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교과서만큼 잘 정리된 책도 참 드물다. 언젠가 고등학교 윤리교과서를 보고 감동한 기억이 난다. 동서고금의 윤리와 철학이 한 권의 도덕 교과서에 착실하게 정리되어있었다. 그 안에 요체가 있건 없건 간에 그 정도의 정리만으로도 굉장한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나중에 참고용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익혀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교과서가 싫었던 것은 그것을 짧은 시간 내에 외워야 했고 그것으로 시험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자발적으로 읽을 수 있는 지금은 교과서는 참으로 교과서적인 책이구나 하는 여유로운 생각마저 할 수 있다. 당신이 교과서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그리고 졸업하면서 깔끔하게 소각하지 않았다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양의 지도는 단연 중고등학교 시절의 교과서이다. 어차피 다 외웠을리가 없을 것이므로 어디를 펴더라도 새로울 것이다.

윤리(완자)

백과사전은 당대 지식의 표준이며 방대한 분량의 지식을 보편적인 시각과 균형 잡힌 감각으로 편집한 지식 창고이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담고 있으며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라면 대충이라도 적혀있는 공간이다. 항목별로 쓰여 있으므로 교과서를 보면서 뭔가 새로운 개념이나 단어가 나왔을 때 찾아보면 충분히 좋은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책이다. 요즈음에는 고전적 스타일의 백과사전 뿐 아니라 검색엔진, 더 나아가 인터넷 자체가 거대한 백과사전이 되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 탓에 무엇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 지가 어지럽고, 그다지 쉽게 쓰여 있지는 않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얼마 전에 누군가 여유 있는 사람 하나가 브리태니커 백과를 다 읽고 그 여정을 적은 책(<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도 하나 나왔다. 나도 한가롭게 백과사전을 완독하고 싶다.

브리태니커 백과

사실 교과서(중고등학교 교과서도 좋고 일반인을 위한 교과서도 좋고)를 읽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백과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선택하기 좋은 교양 습득 방식이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유용한 방법이다. 사실 교과서와 백과사전을 만든 이유도 교양 교육을 위한 것이니 이것이 최적화된 학습방식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당신이 조금이라도 지식에 대한 욕심을 부린다면 백과사전과 교과서는 금새 밑천을 드러낸다. 교과서와 백과사전은 자기 영역 내의 '모든 것'을 다루려 들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 당연한 일이다. 일을 넓게 벌리면 집중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집단에 당신이 놓였을 때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과 두루 친해지려 하지만 그것은 누가 친한지 탐색하는 시간일 뿐이고 사실 정말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한두 명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며 이것은 교양 습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이 시점에 본격적인 '지식의 지도'가 필요해진다. 책이라는 교양의 덩어리는 산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무작정 덤벼들면 그 덩어리에 우리는 묻혀버리고 만다. 어떠한 길로 가야 그 산을 즐길 수 있을까.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좋고 적당한 위치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알려주는 노하우라고 해도 좋고, 선사가 제자에게 내리치는 죽비라고 해도 좋다. 누군가 먼저 간 길이 있다면 다른 험한 숲보다는 그 길로 따라가고 싶다는 것이 누구나 원하는 것일 게다. 굳이 정글로 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빼고.


지식의 지도가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래의 몇 가지 요소를 제안하고 싶다.

1. 항목  주제를 결정한다. 이 주제는 10가지 정도의 이정표(예를 들어 추천하는 책들)를 가져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너무 넓은 주제이므로 '해방정국과 마르크스주의' 정도로 범위를 적당히 끊어야 한다.
2. 초록  최소한 '이것이 무엇이다'라는 것은 짧게나마 적어 주어야 한다. 자세한 설명은 백과사전에 맡기자.
3. 입문(서)  아주 생초보에게도 유용해야 한다. 임의로 중학생 정도의 수준이라고 해 두자. 꼭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음반도 도움이 된다.
4. 기본(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안내를 해주면서도 해설서는 가능하면 지양하고 원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어가 아닌 책을 제시하는 것은 무책임하니 자제하라. 어떤 번역본이 좋을 것인지 추천해주면 더욱 좋다.
5. 심화  더 읽어야 할 것을 적는다. 영어나 일본어 문서도 좋고 논문 형식도 괜찮다.
6. 참조  관련된 항목들을 제시한다.


결국 지식의 지도는 백과사전의 한 형태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단, 설명을 위한 백과사전이 아닌 가이드로서의 백과사전이 될 것이다.

가끔 직장을 구하는 어린 친구들이나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주변인들에게 상담을 해주곤 한다. 순전히 내가 상담해주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저 약간의 경험 정도이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항상 필요한 것은 인생의 멘토이고 동네의 촌로와 같은 현명한 선배인 것이다. 지식의 지도는 그런 면에서 훌륭한 독서지도 교사 노릇을 해줄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읽었다면 그 시점에서 당신은 지식의 지도를 적을 자격과 의무가 생긴다. 자, 그럼 같이 한번 써볼까?


www.personweb.com 거북 칼럼 0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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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스크랩] 쓰촨성 지진 어떻게 일어났나


유라시아·인도板 충돌해 티베트 고원 東進시켜

● 지진 어떻게 발생했나

'티베트중국을 강타했다.'

원촨 대지진의 발생 원인과 관련, 미국 지질조사소(USGS)는 13일 "유라시아 지각판(地殼板)에 속한 티베트 고원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중국 쓰촨성 청두(成都)시 서북쪽에 위치한 룽먼산(龍門山) 단층의 활동을 유발시켰다"며 "티베트 고원과 중국 동남부 지각(地殼)의 충돌이 이번 지진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티베트 고원은 남서쪽으로부터 강력하게 압박해 오는 인도 지각판에 밀려 조금씩 동진(東進)한다. 원래 거대한 섬이었던 인도는 북쪽으로 매년 15㎝씩 이동해 4500만년 전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했다. 양 대륙의 경계선에는 두 판(板)이 부딪치면서 융기 작용으로 인해,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고원이 생겨났다.

이준기(李濬基)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지진학)는 "유라시아 지각판은 인도 지각판의 이동으로 마치 치약을 쥐어짜는 듯한 압력을 받아 찌그러지고 있다"며 "이번 대지진이 발생한 쓰촨성에서는 1933년 8월에도 규모 7.5의 지진이 발생해 9300여명이 사망한 바 있다"고 말했다.

원촨 대지진은 1976년 허베이(河北)성에서 2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탕산(唐山) 대지진'과 같은 직하형(直下型) 지진이다. 진원(震源)이 지표면에서 가까워 지각의 상하 운동이 그대로 전달돼 피해가 컸다. 전 세계 직하형 지진의 3분의 1이 중국에서 발생한다.

가토 데루유키(加藤照之) 도쿄대 지진연구소 교수는 "한신(阪神)대지진(1995년·6434명 사망)과 비교하면, 지진파의 에너지가 10배 더 크고, 진원의 깊이는 10㎞로 '직하형(直下型) 지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앞으로 10일 이내에 진도 5~6강(强)의 여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해외의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지진을, 불교(라마교)를 믿는 티베트인의 독립·자치 시위를 유혈 진압한 중국 정부에 대한 '부처님의 분노'로 해석하기도 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 발생했고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마치고 다음달 중순 티베트 진입을 앞둔 시점에서 티베트 고원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상하이스트(shanghaiist.com) 등 중국 블로그에도 "쓰촨성에 지진이라니… 부처님조차 중국을 분열시키려 하시는가"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지진 피해 지역에는 티베트인들도 많아, 이들 중에도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김민구 기자 roadrunner@chosun.com] 2008.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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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A CHINESE NAME!


http://www.mandarintools.com/chinesename.html


위 사이트에 인적사항을 넣으면 자신의 중국 이름(물론 재미로 보는 거지만...?)을 찾아볼수 있어요
저는  가 나왔어요

뜻은 영어로 나와요
심심할때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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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angsang 2008/04/25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沈言努(잠길 침, 말씀 언, 힘쓸 노)로 나오는걸.(심심해서 찾아본 것은 아니고 궁금해서...)

  2. OpenID Logorollme 2008/04/25 2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어울려요...!

[기사스크랩] "中 까르푸 불매운동 어디까지 가나"


정부자제 촉구속 폭력화 조짐…EU상의 무역전쟁 경고

(베이징.홍콩=연합뉴스)  중국에서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프랑스의 대형 유통업체 까르푸에 대한 불매 운동이 진정될 조짐을 보이지 않아 어떤 국면으로 전환될지 주목되고 있다.

티베트(시짱.西藏)자치구 시위사태와 베이징 올림픽 성화의 파리 봉송 과정에서 있었던 반중국시위에대한 반발로 촉발된 까르푸 불매 운동은 거센 민족주의의 양상을 띠고 연일 인터넷 사이트들을 뜨겁게 달구는가 하면 자칫 폭력화의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인이 모여사는 베이징 왕징(望京)의 까르푸점에는 22일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와 한때 비상이 걸렸다고 홍콩의 빈과일보가 24일 전했다.

경찰은 "쇼핑객들의 혼란을 우려, 손님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수색"했으나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추적 결과 시청(西城)의 한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것으로 확인됐지만 감시카메라가 없어 신분을 확인키 어렵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의 일환으로 중국에 영어교사로 온 미국인 제임스 갤빈(22)은 지난 20일 후난(湖南)성 주저우(株洲)시 까르푸점에서 쇼핑을 하고 나오다 10여명의 시위대와 험악한 대치를 했다. 갤빈은 다행히 경찰의 보호로 아무런 폭력사태 없이 무사히 귀가했지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한참 걸렸다고 AP가 전했다.

시위대는 갤빈을 프랑스인으로 오인해 자칫 폭력을 행사할 태세였고 이를 계기로 갤빈이 교사로 있는 학교는 외국인 교사들이 외출할 때 중국인 직원을 동반시키고 있다.

중국 민중의 반(反)서방 감정의 화살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바뀌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CNN이 중국을 모독한데 대해 사과가 미흡하고 미하원의 반중국 결의안 통과가 이런 계기를 만들고 있다고 홍콩경제일보가 논평했다.

일부 중국인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5월1일 미국 유통업체인 월마트 불매시위와 6월1일 맥도널드 불매 시위를 촉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중국에서 8국 연합군이 또 뭘 하려고 하느냐. 전 세계가 지구인 4분의 1을 차지하는 14억 중국인의 단결된 힘과 4억 휴대전화족의 힘을 보도록 해야 한다. 5월1일 중국의 까르푸, 월마트를 텅빈 매장(冷場)으로 만들고 6월1일엔 KFC, 맥도널드, 피자헛을 고객이 텅비게 만들자"는 문자 메시지가 나돌고 있다.

중국 정부는 까르푸 불매 운동이 확산되면 베이징 올림픽 개최와 경제에 불리하다고 판단, 사실상 불매운동 확산 저지 쪽으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관측되지만 아직 적극적인 저지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이미 관영 언론매체들을 통해 진전한 애국은 각자 맡은 바 일을 열심해 중국을 부강한 만들고 외국의 중국 비난과 모욕에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라며 시위 자제를 촉구했다.

중국 정부는 그러나 인터넷 등을 통해 대학생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거칠게 확산되고 있는 민족주의의 불길을 어떻게 끌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유럽기업인들은 까르푸 불매 운동이 확산되면 보복 조치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중국 EU상공회의소의 조엘 부트케 회장은 까르푸 불매운동이 중단되지 않으면 유럽에서 보복조치로 중국제품에 대한 보이콧 캠페인이 나올 수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까르푸 불매 운동이 자칫 중-EU간 무역 전쟁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경고여서 중국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2008. 4. 24  조성대 정주호 특파원 sdcho@yna.co.kr  jooho@yna.co.kr



`잔다르크는 창녀, 나폴레옹은 변태` 도넘은 中 시위

2008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저지 움직임에 맞서 중국인들의 반(反)프랑스 시위가 갈수록 과격해지면서 국내 네티즌들의 반(反)중국 감정 역시 거세지고 있다.

19일 수백 명의 중국 청년들은 수도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우한(武漢), 칭다오(靑島), 안후이(安徽)성 등에 있는 유통업체 ‘까르푸’ 매장에서 프랑스 제품 불매 운동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까르푸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Dalai Lama)를 재정적으로 지원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프랑스 국기에 ‘잔다르크는 창녀, 나폴레옹은 변태, 프랑스는 나치, 코르시카에 자유를’이란 문구를 적고 심지어 삼색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AFP 통신 등 프랑스 현지 언론들은 이같은 모습을 사진으로 전하며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 잔다르크를 창녀로 일컬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세계적 대축제를 앞두고 감정 싸움으로 치닫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내 네티즌들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제의 사진들이 국내 주요 온라인 사이트 등에 퍼지며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자극시키고 있다. 한 국내 네티즌은 “우리 나라로 치면 유관순 누나, 광개토대왕을 모욕한 셈”이라며 “중국이 도를 넘어도 지나치게 넘었다”고 말했다.

2008. 4. 24   중앙일보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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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겨레21 - 펼쳐진 세상: 외다리축구단

한겨레21 [펼쳐진 세상]외다리 축구단
기사입력 2006-05-09 08:06 |최종수정2006-05-0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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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주제 : 세상에서 가장 가슴아픈 축구시합

부제 : 목발로 강력한 슛 날리는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외다리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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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금이 경기 출전 수당… 몸보다 목발이 부러질까 더 걱정한다네

글·사진 손현철 한국방송 프로듀서

월드컵 첫 상대가 토고로 결정된 것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축구는 아프리카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쿠데타와 내전, 기아와 수탈에 지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축구는 잠시나마 삶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안식처이면서 탈출구다. 산골과 해변, 골목과 차도, 공이 굴러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찢어진 공이든, 싸구려 고무공이든, 발로 찰 수만 있는 것이라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스무 명이든 사람이 있기만 하면, 축구는 아프리카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아프리카의 축구는 전 대륙이 앓는 열병이며 종교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축구가 아프리카 사람들이 현실의 모순에 눈감게 하는 아편과 같은 존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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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유일한 위안이자 희망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절실하고 가슴 저미는 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나라가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다. 이곳에선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11년 동안 벌어진 전쟁으로 5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인구의 4분의 3이 전투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떠돌았다. 납치한 어린아이들에게 마약을 먹이고 전투병으로 이용한 반군은 공포 전술로 민간인들의 수족을 절단해서 악명을 떨쳤다. 이렇게 불구가 된 사람이 2만여 명. 2001년 이들 가운데 일부가 외국 단체의 후원을 받아 축구단을 만들었다. 성치 못한 몸에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이들에게 축구는 삶을 이어갈 희망의 근거였다. 선수들은 매주 토요일 오전, 빈민촌 한가운데 있는 축구장에 모여 기초 체력 훈련을 하고 일반인들과 똑같이 전·후반 45분씩 경기를 한다.

외다리라고 해서 경기가 느릿느릿 진행될 것이라는 구경꾼의 기대는 전반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나자마자 깨져버린다. 목발에 의지한 선수들의 몸놀림은 정상인 뺨칠 정도로 빠르다. 한 발로 공을 모는 드리블이 정교하지는 않지만, 골문 앞에서 강하게 내지르는 슛은 웬만한 골키퍼도 막기 힘들다. 두 팔에 바짝 달라붙은 목발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세 발 달린 새로운 종족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을 두고 격렬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축구단에 들어온 후원금을 경기 출전 수당으로 받기 때문에 선수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뛴다. 정작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몸보다는 알루미늄 목발이 부러지는 걸 더 걱정한다. 목발 여분이 없어 고치기 전까지는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수도 프리타운에 두 팀, 지방에 한 팀 등 50여 명의 외다리 선수들이 축구단에 등록돼 있다. 이들은 축구를 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2005년에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 외다리 축구단 대회에도 참가했다. 손발이 잘린 2만 명 중 더 많은 사람들이 체계적인 축구를 통해 재활을 꿈꾸지만,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시에라리온에는 그들을 지원할 예산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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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강 시간에 봤던 KBS스페셜 : 종교가 된 스포츠, 아프리카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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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된 스포츠, 아프리카 축구』

■ 방  송 : 2006년 4월 1일(토), 저녁 8:00, KBS 1TV
■ 연  출 : 손현철

■ 시리즈 기획의도

2006년5월 23일, 아프리카 세네갈 대표팀과의 평가전 !
2006년 6월 4일, 아프리카 가나 대표팀과의 평가전!
2006년 6월 13일, 월드컵 본선 첫 상대인 토고와의 경기! D-73
우리는 아프리카 축구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2006년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는 전통의 강호들 대신 토고와 가나, 코트디부아르, 앙골라 등 신진 세력들이 사상 최초로 본선에 진출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전대륙에 걸친 실력 상승으로 인해 불붙기 시작한 아프리카의 축구 열풍은,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을 기점으로 폭발할 전망이다. 이번 월드컵 본선에서 치러지는 토고와의 첫 경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이미 아프리카 축구의 전력 분석은 수차례 보도된 바 있으나, 대부분 경쟁상대로 분석하는 데서 그쳤다. 본 프로그램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종교라고 할 정도로 절대적인 스포츠가 된 축구를 현지 밀착 취재로 조명, 축구를 통해 아프리카의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 취재국

- 1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개최국, 이집트
- 2002 월드컵 8강 신화, 세네갈
- 내전의 참화를 딛고 일어난 외다리 축구단, 시에라리온
- 아프리카 축구의 최고(最古) 본산지, 가나
- 떠오르는 신예 강국, 토고

■ 방송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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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통을 딛고 다시 뛰는 불구의 전사들 - 시에라리온 외다리 축구단

“축구는 희망을 의미한다. 축구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축구는 모든 곳에 평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시에라리온이 평화를 사랑하고 어떻게 전쟁을 극복했는지 보여주고 싶다."
- 외다리 축구단 선수 인터뷰 중에서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내전으로 인해 불구가 된 시에라리온의 아이들. 잔혹한 역사 속에 허물어진 그들의 몸뚱이를 일으키고, 희망과 웃음을 되찾아 준 것은 다름 아닌 축구였다. 현재 시에라리온에서는 3팀의 외다리 축구단이 활동하고 있다. 튼튼한 두 발 대신 외다리와 두 개의 목발에 의지해 필드를 뛰어다니지만, 외다리 축구단은 어떤 프로 리그의 선수들보다 건강한 정신력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2. 축구의 열정을 교육의 동력으로 - 세네갈 축구 학교

지난 월드컵 당시 8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세네갈. 세네갈에서는 유럽 프로 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이 모국의 인재들을 위해 축구 학교를 속속 세우고 있다. 세네갈 축구 학교의 교장은 그동안 훌륭한 가능성을 가진 아프리카의 어린 선수들이 공 한 번 차 볼 기회도 흔치 않았던 점을 지적한다. 강하고 탄력 있는 몸을 타고난 아프리카인들이, 교육을 통해 실력을 쌓으면 결코 유럽 선수들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들 축구학교에서는축구기술을 가르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축구의 열정을 교육의 원동력으로 삼아 전인적인 교육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3. 그들에게 축구는 유일한 종교다!

“축구는 아프리카에서 종교나 다름없으며 가나에서도 최고의 스포츠이다. 축구는 이 나라 최고의 스포츠이자 모든 사람들이 숭배하는 종교와 같다. “
- FIFA가 선정한 100대 축구스타, 아베디 펠레와의 현지 인터뷰 중에서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되는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는 2005년 자국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했으나, 결선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정계에 입문했던 축구 선수는 펠레나 지코도 있었지만, 웨아가 유권자들로부터 그토록 막강한 지지를 얻었던 것을 통해 아프리카 내에서 축구 선수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통치자들은 축구를 통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고, 어린아이들은 바닷가나 골목, 어디에서나 축구를 하며, 여성들은 장래의 배우자로 축구 선수를 가장 선망한다. 동네 클럽 경기에서조차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그네들의 모습은, 흡사 종교 제의의 신도들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선수들은 경기에 출장하기 전에 부두교의 부적을 받거나, 의식을 치르기도 할 정도로 토착종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에서 축구는 정치이며, 여가인 동시에, 종교다.

4. 여전히 척박한 인프라 - 모래사장과 찢어진 축구공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공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유럽의 아이들 경우와 달리, 찢어진 축구공에 우르르 매달려야 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는 재능을 확인할 길조차도 제한적이다. 잔디구장은 커녕 제대로 정비된 길조차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공을 차야 한다. 아프리카 축구팀의 관계자들은 그들의 선수들이 신체 조건이나 체력에 있어선 유럽/남미권 선수들보다 선천적으로 뛰어나지만, 낙후된 인프라야말로 그동안 성적 부진의 결정적 이유라고 진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아프리카의 선수들은 유럽이나 다른 대륙으로의 진출을 최상의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5. 제2의 노예수출? - 유럽으로 팔려가는 선수들

“아프리카 선수들은 아주 훌륭하다. 그들은 체력이 무척 강하고 빠르고 키도 크고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 “
- 유럽 축구 클럽의 에이전트 인터뷰 중에서

아프리카인들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곧 자신의 나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모래밭에서 맨발로 낡은 축구공을 차면서, 그들이 오로지 꿈꾸는 것은 외국 리그로의 진출이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우수한 체격 조건과 정신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몸값을 가졌기 때문에, 유럽의 에이전시로부터 각광을 받는다. 현재 26명의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 밖에 유럽 리그의 아프리카 선수들을 합치면 수백 명에 이른다. 그러나, 유럽으로 진출한 아프리카 선수들은 대부분 ‘제2의 노예 수출’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 불리한 계약 조건은 차치하고라도, 팀 내에서의 인종 차별과 모욕 등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6. 아프리카 각국의 모든 ‘축구장’은 중국이 지어준다!

현재 UN에 의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축구 학교를 설립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전 세계 여러 기업들도 축구를 통해 자원의 보고인 아프리카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의 공장’ 중국은 일찍부터 자원 확보와 시장 개척을 노리고 아프리카 각국에 축구장을 건설해왔다. 한국의 LG 역시 ‘97년부터 LG컵 축구대회를 꾸준히 개최하며 현지 주민들로부터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21세기, 자원 창고와 시장으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프리카 대륙에서 ’축구‘는 가장 강력한 외교 수단이 될 것이다.

7. 새로운 세기에 과연 검은 대륙은 월드컵을 차지할 것인가?

이미 2002년 세네갈이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연출하면서 시작된 아프리카 축구 열풍은, 2006년에도 새로운 국가들이 본선에 진출하며 역사를 다시 썼다. 이 기세로 나간다면 아프리카 대륙이 21세기에 월드컵을 차지하리라는 예상도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니다. 개선되어 가는 제반 환경 속에서, 타고난 재능을 구비한 선수들이 종교에 가까울 정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지금, 검은 대륙으로부터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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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 2008/03/31 0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에라리온의 평균수명이 40.
    아프리카 인구 중 15세 미만의 청소년이 절반.
    다큐멘터리의 시작부터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스크랩) 올림픽 개최할 자격이 있습니까? / 빼앗긴 티베트에도 봄은 오는가?

로이터

‘올림픽 개최할 자격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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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3-27 14:06


26일(이하 현지 시간) 독일 북부 함부르크(Hamburg)에서 티베트 망명자들이 티베트 지지 및 2008베이징올림픽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로이터 기사목록|기사제공 :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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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세계]빼앗긴 티베트에도 ‘봄’은 오는가

전역으로 번지는 독립 시위, 전 세계를 향해 “이 땅의 고통을 알아달라”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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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숨겨두었던 시한폭탄이 터졌다.” 티베트 라싸에서 시작된 독립 시위를 지켜본 한 서양인의 말이다. 이번 사태는 3월 10일 티베트의 중심도시 라싸의 소규모 시위로부터 시작됐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예고된 행사였다. 그에 맞추어 수백 명의 티베트 난민들이 인도 땅에서 출발하여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까지 평화의 행진을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시위의 배후에 달라이라마와 망명 정부가 있다고 보고 강력한 초기 진압에 나섰다.

티 베트 망명 정부의 대외정보처 다와 체링 장관은 사태의 발단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민감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50년간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에 가해진 억압이 완화되리라는 기대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점점 더 제재가 심하고 종교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자 대다수 티베트 사람의 실망이 폭발한 것입니다.”

중국 과도한 진압이 사태 악화시켜 매년 반복된 라싸 봉기 기념 시위가 올림픽을 앞두고 예민한 사태를 빚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과도한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한 것이 대규모 소요 사태를 일으켰다는 분석이 있다. 티베트 망명 정부는 소식통을 인용하여 라싸에서만 120여 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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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3월 16일 칭하이 암도 지역의 시위에서 총상으로 숨진 학생 노르부(17). (아래) 3월 16일 칭하이 암도 지역의 시위 당시 군인의 총격으로 숨진 승려와 학생. 지역 최대 사원인 키르티 승원의 참배객들이 비탄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강 경한 무력 진압으로 현재 라싸는 진정되었으나 시위는 티베트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16일과 17일 칭하이성 암도 지방에서 키르티 승원의 승려를 중심으로 1만3000여 명의 시위대가 봉기했다. 5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현지의 전언이 있다. 그리고 현지에서 무차별 연행과 검색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람살라의 티베트 인권협회에서 일하는 타시 겜포는 현지 소식을 담은 사진과 메일을 보내며 이렇게 전했다. “제 고향 마을에 병력을 가득 실은 120여 대의 트럭이 들이닥쳤답니다. 아무 집이나 수색하여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연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주동자들과 과거 정치범의 전력이 있는 사람, 그들과 친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많은 소식을 모아 세상에 전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것뿐입니다.”

18일 오후 쓰촨성 캄지방의 간체지역에서 티베트인 4명이 공개 총살됐다. 3명의 승려를 포함해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체포된 인물들이다. 그 밖에도 곳곳에서 공개 처형 소식이 들리고 있다. 중국 당국의 삼엄한 검열과 통제에도 불구하고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여 촬영된 동영상과 사진은 시위대에 대한 진압이 얼마나 잔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사태는 중국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초기 승려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시위는 차츰 학생층으로 번지고 있다. 티베트 지역의 대학뿐 아니라 베이징 대학에서 공부하는 티베트 학생들까지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어 문제는 복잡해졌다.

중 국 정부가 우려하는 것은 티베트인들의 독립 투쟁이 다른 소수민족에게까지 번지는 것이다. 특히 위그르족 회교도들도 같은 주장으로 일어선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들 것이다. 중국 정부가 사태 초기에 ‘인민전쟁’을 선포하고 강경책으로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티베트 사태 직후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국가 주석으로 재임명된 후진타오는 티베트와는 악연이 있다. 1987년 톈안먼 사태 당시 티베트 공산당 서기로 있던 후진타오는 티베트 지역에 14개월간 계엄령을 선포하고 혹독한 탄압으로 티베트인의 봉기를 조기 진압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후진타오는 배후로 달라이 라마를 지목한다. 그가 분열과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공식 반응은 간단하다. 자신이 배후라면 국제적으로 공개 조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한편으로 중국 측에 일방적인 진압을 자제해줄 것을 호소했다. 티베트인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더 간결했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폭력으로 맞서지 말고 인욕(忍辱)하자”는 것이다.

다와 체링 장관은 중국 측에서 교묘히 보도 자료를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입수한 정보와 서방에 보도되는 자료는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의도적으로 폭력성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조작된 자료를 통해 티베트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기만하고 있습니다. 티베트를 세계의 이목으로부터 고립시키려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비폭력 평화정책 위기 일부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평화정책이 이번 기회에 도전받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티베트인 사이에서도 비폭력 노선에 대한 불만은 존재한다. 가장 정치적이며 과격파로 알려진 티베트 청년회 소속의 텐진 다와는 이를 완곡하게 표현했다. “자신의 백성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에는 공감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세계 어느 누구도 폭력에 반대하는 우리의 노력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어떤 투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하지 못했다. “중국인들을 해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중국 정부 건물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부수거나 하는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결국 달라이 라마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평생 평화와 자비를 말해온 달라이 라마의 노력은 강한 호소력를 지니고 있지만 약점이 있다. 견디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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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성 눕장 대학 학생 시위.
중국 정부는 오래 전부터 억압책과 내부 분열책을 함께 쓰고 있다. 달라이 라마를 종교 지도자가 아닌 봉건 군주로 부각시켰으며 최근에는 사교 집단의 우두머리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티베트 불교계 내부에서 달라이 라마를 반대하는 세력인 슉덴파를 지원하여 분열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인들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충성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매년 3000명에 가까운 망명자가 그를 찾아 다람살라에 도착한다. 반세기가 지났어도 그의 지도력은 무너지지 않았다. 어떤 계책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중심으로 건재하고 있다.

다람살라에서 신입 난민을 돕고 있는 페마 돌마는 며칠째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가 좀 더 티베트 문제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50년 동안 겪어온 고통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아주 작은 일만으로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불참)해주십시오. 중국산 물건의 불매운동에 동참해주십시오. 여러분이 피를 흘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고, 티베트 사람들이 흘리는 피를 막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 세계의 관심 속에서 자신들의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이 담겨 있다.

일부 선수 베이징올림픽 불참 선언 아직 서방 국가 중에서 공식적으로 올림픽을 보이콧하겠다는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스포츠 스타들은 티베트 문제에 항의하여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티베트를 지지하는 서방인들은 베이징 주경기장에서 조직적인 항의 시위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올림픽을 통한 압박이 서서히 시작됐다. 중국 정부가 원하는 조용한 올림픽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똑같은 압박이 티베트 망명 정부에도 가해지고 있다. 일부 서방 국가는 자국 내에서 격렬해지고 있는 티베트인의 반중 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인도 정부는 앞서 평화의 행진을 제지하고 주모자들을 억류했다. 친중국 노선을 달리고 있는 네팔 정부는 티베트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외교 라인을 통해 분쟁을 중단하라는 압박이 증가되고 있다.

망명 정부 고위층과 밀접한 현지 소식통은 현재 심각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수일 내 티베트 민간 단체의 지도자들을 불러 시위를 중단하라고 요청할 것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망명자들의 분위기는 점차 고양되고 있다. 이들은 인도 정착지 전역에서 생업을 중단하고 시위와 농성에 나서고 있다. 고향 땅에서 들려오는 탄압과 처형의 소식에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 람살라의 모든 티베트 상점은 문을 닫았다. 학교도 잠시 문을 닫았다. 달라이라마 사원의 앞에서 승려들은 밤낮으로 단식 농성을 한다. 밤이면 촛불을 든 행렬이 이어지고 곳곳에 희생자들의 명단과 사진이 붙어 있다. 하루 몇 차례씩 침묵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외로운 절규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티베트 땅이 조용해진다 해도 그것은 평화가 아닐 것이다. 평화를 가장한 억압과 폭력일 뿐이다. 우리도 불과 반세기 전 같은 비극을 겪었다. 나라와 말과 문화와 영혼을 빼앗긴 채 굴종을 강요받거나 망명을 택해야 했다. 아무도 우리의 비극에 귀를 기울이고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지금 티베트 사람들은 같은 고난을 겪고 있다. 세상이 잊지 않고 귀를 기울일 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억압도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글·김천<객원기자> mindtemple@gmail.com 자료 제공·다와 체링<티베트 망명정부 장관> 사진 제공·티베트 인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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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 2008/03/31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보들을 모아볼까요? 107스튜디오 블로그에 있는 사진들도 링크 걸어둘게요. http://107studio.haja.net/132

KBS스페셜 함께 봅시다) 티베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긴급리포트,
티베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 방송일시 : 2008년 3월 23일 (일) 밤 8시, KBS 1TV
◎ 연출 : 최석순 PD, 서용하 PD, 홍기호 PD / 글 : 정영미 작가


<기획의도>

지 난 3월 10일,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수도 라싸. 최소 수천의 티베트인들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티베트인 사상자만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정부는 티베트에 대한 외국 언론의 접근을 차단, 정확한 사태파악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국정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달라이라마가 유혈시위를 배후 조종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과연 티베트 사태의 진실은 무엇인가. 티베트인들은 무엇을 위해 피 흘리는가.
KBS스페셜에서는 폭풍전야와 같은 티베트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했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입장과 그 주변국 상황을 통해 티베트 사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중국과 티베트, 세계가 빠진 딜레마를 분석했다.


<방송내용>

1. 2008년 3월 티베트의 잃어버린 봄.


세 상에서 가장 높은 은둔의 땅 티베트, 지금 이 곳은 고립되어 있다. 외국인과 언론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 된 가운데 우리는 거대한 히말라야 밖에서만 그 곳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라싸에서 시작된 티베트 독립시위는 티베트 주변부로 급속히 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각지에서도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티베트인들의 시위가 거세게 전개되고 있다. 티베트를 철저히 폐쇄한 중국정부는 사망자는 약 20여명에 불과할 뿐, 사태는 이미 진정되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티베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KBS 스페셜팀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 취재팀을 긴급히 파견, 망명정부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망명자 센터에서 티베트에서 막 탈출한 티베트인들을 만나 시위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해 들었다. 또 티베트 현지에 전화 연결을 통해 티베트의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2. 티베트의 살아있는 부처, 달라이라마.


티베트 시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중국이 티베트 사태의 주동자라고 지명하는 그는 지금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 있다. 비폭력 노선으로 자치권의 확보를 주장하던 달라이라마는 이번 시위의 폭력성과 중국정부의 강경진압에 무력감을 실토하며 은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라마를 따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넘어 망명한다는데.. 과연 달라이라마는 누구이며 그를 중심에 둔 티베트 불교와 문화는 무엇인가. 또한 이는 이번 사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3. 중국과 티베트 긴장의 역사.

1950년 티베트가 중국에 합병된 이후, 독립항쟁과 무력진압의 역사는 58년간 계속되었다. 한족과 50여개의 소수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은 티베트의 분리 독립을 허용할 경우 다른 소수 민족의 단결에도 영향을 끼치며 중국 대륙 전체의 분열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한반도의 6배에 해당하는 티베트는 천연자원의 매장이 풍부한 경제적 ‘보고’이자, 군사전략적으로도 요충지.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절대 티베트의 분리 독립을 허용할 수 없는 입장이다. 중국은 티베트의 계속적인 지배를 위해 다양한 경제적 지원을 통한 유화정책을 펼치는 한편, 한족 동화정책과 티베트 문화에 대한 교묘한 말살정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중국과 티베트, 그 미묘한 관계의 역사를 스페셜에서 분석해본다.


4. 티베트, 딜레마에 처한 신의 땅.


2008 년 베이징 올림픽을 목전에 둔 중국으로서는 이번 티베트 시위와 중국군의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에 그 어느 때 보다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피고 있다. 자칫 올림픽 보이콧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일부 외국 선수들의 보이콧에 대한 소문은 있었지만 명시적으로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한 나라는 없는 상황이다.
세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중국은 과연 이번 사태를 매끄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티베트의 독립요구는 세계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슈퍼파워 중국과 극적인 힘겨루기를 벌이는 티베트의 운명을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예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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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penID Logo세이랜 2008/03/22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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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럽의 도시 - 다뉴브강의 잔 물결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6/h2007061917505186330.htm
2007. 6. 19.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15>부다페스트-다뉴브강의 잔물결
헝가리 기자 주잔나 "TV로 본 한강풍경 환상적이야"
부다페스트를 직접 본 나 "다뉴브강이 훨씬 더 예뻐"
강따라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쉬는 '동방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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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잔나 R.는 부다페스트에 본사를 둔 <마자르 라디오> 기자였다. 눈동자는 쪽빛이었고 머리카락은 볏짚을 연상시켰다. 나보다 조금 컸으니 키가 180㎝에 가까웠을 게다.
독일어를 제 모국어만큼 빠르게 내뱉을 줄 알았다. 영어로 말할 땐 속도가 좀 줄었다. 프랑스어로 말할 땐 할머니들처럼 음절을 또박또박 끊으며, 몸짓을 섞어가며, 느릿느릿 낱말을 이어갔다. 세 외국어 가운데서 프랑스어가 그녀에게 가장 덜 익숙하다는 뜻이었을 게다.

그래도 주잔나는 프랑스어로 말하길 즐겼다. 친구들이 그녀에게 영어로 말을 건네도, 그녀는 프랑스어로 대답하기 일쑤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여긴 파리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가 서울에 오지 않는 건 한국어를 아직 익히지 못해서 일까?

“서울 정말 예쁘더라.” 수인사를 나누고 사나흘쯤 뒤 퐁피두센터 근처의 카페 보부르에서 그녀가 염소치즈샐러드를 입에 우물거리며 말했다. 1988년 올림픽 때 헝가리의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본 서울 풍경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 강 있잖아. 서울을 흐르는 강.” 내가 ‘한강’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래, 그 한강 둘레 풍경. 환상적이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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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자신이 처음 사귄 한국인 친구에게 기쁨을 주려고 주잔나가 부러 실천한 입발림이었을 수도 있다. (“환상적이군! Fantastique!”은, “굉장하군! Super!”와 함께, 주잔나가 늘상 애용하는 간투사였다.) 그게 아니면 정말 헝가리 텔레비전에 비친 한강 주변 풍경이 아름다웠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카메라맨의 재주가 정녕 놀랍다. 도대체 어떤 마술로 한강 주변의 삭막한 풍경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나는 그 자리에서, 육안으로 보는 한강 둘레 풍경은 끔찍하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바로 한강변에서 자랐으니 이 말은 믿어도 된다고 첨언했다. 나는 처음에 한강 둘레 풍경이 ‘테리블(terrible)’하다고 말했다가 곧 ‘오리블(horrible)’로 바꾸었다. 둘 다 ‘무시무시하다’는 뜻의 프랑스어지만, ‘테리블’은 맥락에 따라 대단히 긍정적인 의미를 담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제 말에 맞장구치는 것으로 주잔나가 오해할까봐 얼른 ‘오리블’을 덧붙인 것이다.

주잔나에게 답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마 부다페스트가 훨씬 더 예쁠 거야.” 확신을 지니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 때까지 나는 육안으로는커녕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주잔나의 고향 풍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유럽인들이 부다페스트를 두고 ‘동방의 파리’니 ‘다뉴브의 진주’니 하는 말을 흘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 영 자신 없이 한 말은 아니다.

적어도 부다페스트가 서울보다 미울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몇 달 뒤 부다페스트에 다녀온 나는 주잔나에게 확신을 지니고 알려주었다. “부다페스트가 서울보다 예뻐. 다뉴브강 주변이 한강 주변보다 훨씬 더 예뻐.” 부다페스트는 확실히 서울보다 볼만했다. 하기야 유럽에 서울만 못한 수도가 어디 있으랴. 서울에선 도대체 과거를 읽을 수 없지 않은가. 역사를 지워버린 600년 고도가 서울이다.

부다페스트에선 적어도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쉬고 있었다. 헝가리 건국 신화와 연결된 ‘어부의 요새’는 그 역사의 가장 오랜 지층이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다뉴브의 진주’라는 찬사는 다소 과장된 것 아닌가 싶다. 빈이나 베오그라드 같은, 다뉴브 연안의 다른 도시들도 내 눈엔 부다페스트 못지않았다. 그러나 그만해도 어딘가. 육안으로 보기 전에 내가 부다페스트에 대해 지닌 이미지는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이나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쓰러진 열세 살 소녀’ 따위였다.

고등학생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 때문이었다.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세 해 뒤 찾은 부다페스트에는 그런 비극적 드라마 흔적이 없었다. 김춘수의 시도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로 시작하거니와, 내가 유럽에서 처음 다뉴브를 본 것이 부다페스트에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유럽에서 처음 본, 강다운 강이었다. 한강변에서 자라 강이라면 한강 정도 너비는 지니려니 여겼던 내게, 파리의 센강은 개천이나 한가지였다. 그런데 부다페스트의 다뉴브는, 서울의 한강만큼 넓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강다웠다.

나는 지난주 베오그라드 얘기를 하면서 이 강을 ‘도나우’라 불렀다. 그것을 지금 ‘다뉴브’라 부르는 것은, 도나우라는 독일어 이름보다 다뉴브라는 영어 이름이 차라리 더 공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뉴브는 유럽에서 볼가강에 이어 둘째로 긴 강이고, 우리가 흔히 진짜 유럽이라 여기는 러시아 서쪽에선 가장 긴 강이다.

독일 남부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하는 브리가흐강과 브레크강은 인근의 도나우에싱엔이라는 곳에서 합류한 뒤 흑해를 향해 기다란 여정을 시작하는데, 도나우에싱엔 이후의 물줄기를 다뉴브라 부른다. 그 본류만 해도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열 나라를 흐르고, 그 지류까지 합하면 이탈리아 스위스 체코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폴란드 등 거의 그 만큼 수의 나라를 더 지난다. 독일 이동(以東)의 유럽 나라 거의 전부를 다뉴브가 적시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강을 부르는 이름도 많다. 영어 이름 다뉴브말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독일어 이름 ‘도나우’지만, 베오그라드에서 쓰는 세르비아어로는 ‘두나브’고, 부다페스트에서 쓰는 헝가리어로는 ‘두너’다. 제 영토 안에 다뉴브의 흐름을 안은 다른 많은 나라들도 이 강을 제가끔 서로 달리 부른다.

한국인들에게 이 강 이름이 익숙해진 것은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왈츠곡 덕분일 텐데, 그 선율을 만든 요시프 이바노비치는 루마니아 사람이다. 그의 모국어로 다뉴브는 ‘두너레’에 가깝다. 그 이름들은 모두 ‘흐름’이나 ‘강’을 뜻하는 고대 이란어 ‘다누’에서 왔다 한다. 이 강의 구획에 따라 해당 지역 언어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가장 공정하겠지만, 그것은 필자나 독자 모두에게 번거로운 일일 테다. 그래서 차라리 한국인에게 익숙한, 그리고 이 강 유역 사람들 모두에게 공정히 이질적인 영어 이름 ‘다뉴브’를 사용하려 한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를 사이에 두고 각기 발달한 부다와 페스트가 1873년 한 행정구역으로 묶여 태어난 쌍둥이 도시다. 정확히 말하자면, 좌안(동쪽)의 페스트와 우안(서쪽)의 부다 그리고 오부다(‘옛 부다’라는 뜻이라 한다)가 한 도시로 묶였으니 세쌍둥이 도시라 할 수 있다. 왕궁과 요새 등 헝가리 역사의 영욕을 상징하는 건조물들은 부다에 있지만, 비즈니스와 문화활동으로 붐비는 페스트 쪽이 더 번화하다.

나는 부다페스트엘 두 번 가봤다. 첫 번째는 방문이랄 것도 없었다. 자그레브에서 버스를 수없이 갈아타고 도착한 이 도시에서 하룻밤을 잔 뒤 이튿날 베오그라드행 열차를 탔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문 땐 닷새를 머물며 도시를 음미했다. 호텔이 부다의 모스크바 광장 부근에 있었는데, 치얼로가니 거리를 내달아 다뉴브에 다다른 뒤 강을 따라 세체니 란츠히드 다리 쪽으로 걸으며 강 건너편의 페스트와 이편의 부다 풍경을 살피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저절로 <다뉴브강의 잔물결>이 흥얼거려졌다. 입구를 사자 상(像)으로 장식한 세체니 란츠히드 다리는 파리 센강의 알렉산드르3세 다리를 연상시킬 만큼 화려하다. 그 다리 한 가운데 서서 북쪽의 하중도(河中島) 마르기트 섬을 보고 있노라면, 아닌게아니라 파리 느낌이 설핏 든다. ‘동방의 파리’라는 별명을 납득할 것도 같다.

부다페스트 거리를 걸을 때 특히 이방인 의식이 드는 것은 그 이정표들이 주는 아득함 때문이다. 물론 동유럽의 슬라브어권 도시들도 크게 다르진 않으나, 그래도 그 도시들의 이정표에서는 어렴풋하게라도 뜻을 짐작할 수 있는 말들이 더러 발견된다. 그러나 부다페스트에선 어림없다. 그 거리의 이정표에 적혀있는 말들은 딴 유럽어들과 너무 다르다. 16세기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헝가리 역사는 오스트리아 역사와 적어도 그 상층부에서는 한몸을 이룰 때가 많았지만, 부다페스트의 도로표지판에서 이방인이 발견할 수 있는 독일어의 흔적은 도무지 없었다. 헝가리어는, 그 말을 쓰는 마자르족이 그렇듯, 인도유럽어 지역에서 드문드문 발견되는 언어적 섬이다. 마자르족은 그 원향(源鄕)이 중앙아시아 어디라 한다. 한국인들도 제 조상이 수천 년 전 중앙아시아 어디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헝가리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는 한국에 가까운 나라인지도 모른다.

부다페스트나 그 부근에서 태어나 이 도시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20세기 지식인들 몇은 한국인들 귀에도 익숙하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미학에서 정치사상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 웅장하고 아름다운 지적 건조물을 세운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지외르지 루카치(헝가리인들은 동아시아인들처럼 성을 앞세우니 루카치 지외르지가 돼야겠지만)일 것이다. 루카치는, 비록 제 지적 작업을 헝가리어로보다는 독일어로 훨씬 더 많이 수행했지만,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생애 대부분을 이 도시에서 살다 이 도시에서 죽은 진짜 부다페스트 사람이었다. 지식사회학의 개척자 카를 만하임과, <예술과 문학의 사회사>라는 책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예술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도 빠뜨릴 수 없다. 만하임은 학자로서의 삶 대부분을 독일과 영국에서 살았지만,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자랐고 부다페스트대학에서 지적 항해를 시작했다. 하우저 역시 장년기 이후를 망명 생활로 채웠지만 예술사 공부를 시작한 것은 부다페스트대학에서였다. 루카치와 만하임, 하우저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부다페스트에서 활동을 펼친 청년지식인 그룹 ‘일요서클’의 동료들이기도 했다.

몇 년 전 롤프 슈벨 감독의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봤다. 1933년 부다페스트의 한 아마추어 작곡가 손에서 태어나 전세계 수십 명의 젊은이들을 자살로 내몰았다는 동명의 노래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다. 당연히, 배경이 부다페스트였다. 스크린 속의 부다페스트는 내가 실제로 본 부다페스트보다 한결 예뻤다. 그게 카메라의 힘이겠지. 주잔나가 서울을 예쁘다 여겼던 것이 이해된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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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천재들, 서번트 신드롬

자유게시판(방명록)에 왕뇌(왕양인가..?)가 올린 뉴스를 읽다가
최근에 책이 출간되었다는 뉴스를 읽은 것 같아서 몇 가지 찾아보았어요.
수업시간에 보았던 비디오는 (영화 [레인맨]이 삽입된 것) 다른 부분이 인터넷에 올라와있네요.


최근에 나온 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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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떨어지는 괴짜, 사회와 소통하다
자서전 낸 ‘석학(碩學) 증후군’ 다니엘 타멧 인터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27/2007082700050.html

“나를 외톨이로 만들었던 자폐가 세상의 관심 끌게 만든 다리 돼 부모의 믿음이 자녀 미래 바꿔”
‘브레인 맨, 천국을 만나다’ 한국어판 출간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입력 : 2007.08.27 00:32

 며칠전 말레이시아의 천재 소년화가 핑리안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올랐었다. 올해 열한 살인 핑리안은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며 현재 작품이 장당 10만달러(한화 약 1억원)를 호가할 정도다. 그는 자폐증 환자 중 특정 분야에 천재성을 보이는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자폐 서번트는 베리 레빈슨 감독의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먼(사진)이 분한 레이먼드 배빗을 통해 일반인들도 널리 이해하게 됐다. 영화에서처럼 레이먼드의 실재 인물인 킴픽(Kim Peek)도 수(數)개념과 암산능력에 천재성을 보였다. 이 책의 저자 다니엘 타멧도 자폐 서번트다. 1979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자폐증으로

“저는 인생의 아주 이른 시기부터 제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어요. 극심하게 외로웠지만, 다행히 점차적으로, 아주 힘겹게나마 자신을 그런 상태의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었어요.” 22일 정오, 영국 켄트에 있는 자택에서 수화기를 든 타멧은 느리고 차분하게, 흡사 깊고 서늘한 자기 내면의 우물에서 한 움큼씩 물을 끌어올리듯 말을 이었다. 바로 이 청년, 다니엘 타멧(Daniel Tamet·28)은 자서전의 한국어판 출간을 축하하며 기자와 전화인터뷰를 나눴다.

‘브레인 맨’은 영미권 언론이 타멧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는 자폐증의 일종인 석학(碩學) 증후군(Savant Syndrome) 환자다. 타멧은 영어 외에 불어·독어·핀란드어·아이슬란드어 등 9개 국어를 한다. 외국어를 익히고 숫자를 계산하는 능력은 천재적이지만, 남과 교감하는 사회성은 박약하다.

타멧은 아침식사 때 묽은 죽을 전자 저울에 달아 ‘정확하게’ 45g 먹는다. 집을 나서기 전에는 자기가 걸친 옷이 몇 벌인지 꼭 세어본다. 그러나 자기 앞에 나열된 일상의 질서가 예고 없이 흐트러지는 순간, 불안이 그를 엄습한다. 통화에서 타멧은 “나는 오랫동안 혹독하게 외로웠다”고 말했다. “아주 어렸을 땐 내 방에서 나 혼자, 내가 하고 싶은 놀이에 몰두하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행복했어요. 아홉 살쯤 되면서 ‘친구’를 원하기 시작했죠.”그러나 그는 ‘왕따’ 였다. 타멧은 책에 이렇게 썼다. ‘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길 바랐지만 그건 물리적 거리가 아닌 정서적인 친밀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다른 아이들 가까이 가서 그 친구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를 느끼려고 했다’(145쪽). 아이들은 불쑥 튀어나와 몸을 만지는 타멧을 싫어했다. 간간이나마 어울려주는 친구는 그와 마찬가지로 외톨이인, 갓 이민 온 외국인 친구들뿐이었다.

다행히 학교 성적은 좋았다. ‘암기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영어·불어·독어는 A, 수학은 B였다. 수학이 B라는 대목이야말로 타멧의 남다른 사고 구조를 잘 드러내준다. 그에게 수학은 대수나 기하가 아니라 일종의 ‘공감각’(synesthesia)이다. 그건 여러 감각이 신경학적으로 혼합된 현상이다. 타멧의 머릿속에선 사물과 숫자와 낱말이 제각각 색깔·형태·촉감·움직임을 갖고 있다. 그는 1부터 1만까지의 모든 숫자에 대해 고유한 시각적·정서적 느낌을 받는다. “1은 밝고 반짝이는 흰색, 5는 바위에 부딪치는 우렁찬 파도소리” 하는 식이다. ‘한국’(Korea)은 황금색 금속, ‘서울’(Seoul)은 은색 금속, 사람들이 싸우는 목소리는 짙은 청색이다.

이 책의 원제(Born on a Blue Day·푸른 요일에 태어났다는 뜻)는 수요일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영어권 아이들이 너나없이 듣고 자라는 ‘마더 구즈’ 동화의 한 대목, “수요일의 아이는 슬픔이 많다”(Wednesday’s child is full of woe)는 구절이 겹쳐져 있다. 문제는 이런 감각이 타멧 혼자만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거위’(geese)라는 낱말에서 녹색을 떠올리지만, 진짜 거위는 흰색이다.

타멧은 ‘피보나치 수열’ 같은 고난도 수식을 단번에 이해하면서 숫자를 문자로 치환해서 푸는 간단한 방정식에는 서투르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군왕 수백 명의 재위 연도는 줄줄 외면서 문학적 은유, 철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쩔쩔맨다. 양치질하고, 신발끈 매고, 오른쪽·왼쪽을 구분하려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118쪽). 요컨대 남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도 그걸 활용해 학문적 성취를 이룰 수는 없는 사고 구조다.

타멧이 자폐를 극복한 계기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 왔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혼자 리투아니아로 떠났다. 이 한적한 나라에서 1년간 영어 교사로 자원봉사 하면서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웠다. “우정이란 갑자기 달려들어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단계를 밟아가며 발전시키는 섬세하고 점진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186쪽).  귀국한 뒤엔 애인도 생겼다. 인터넷에서 메일을 주고받던 친구 닐(31·컴퓨터 프로그래머)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닐은 자폐증이 없는 일반인이지만 타멧과 마찬가지로 수줍고 내성적이다. 타멧은 원주율 암송의 유럽 기록을 세운 뒤 미국의 유명 토크쇼인 ‘데이빗 레터만 쇼’에 초청 받는 등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닐과 함께 켄트에 있는 조그만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마당에 야채를 키우고, 뜰이 보이는 부엌에서 글을 쓰다가, 하루 서너 번 정해진 시간에 차를 마시는 조용한 인생이다. 두 사람은 닐이 재택 근무를 해서 버는 돈, 타멧이 버는 인세와 강연료로 먹고 산다.

타멧의 낙은 자기만의 언어인 ‘만티’어(語)를 고안하고 다듬는 것이다. 낱말의 실제 뜻과 자기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가 충돌하는 현실의 언어와 달리, 그가 만들어낸, 한 사람을 위한 언어인 ‘만티’어는 낱말의 뜻과 이미지가 행복하게 일치한다. 지금까지 낱말 1000개를 만들었고, 문법 체계를 대충 다듬었다. 그는 언젠가 이 언어를 완성하겠다고 했다. 타멧은 “부모님은 가난하고 못 배웠지만, 남과 다른 아들을 내치지 않고 한결같이 사랑해주셨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보다 통화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전달하는 뜻은 분명했다.

“덕분에 저는 가족 품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했어요. 인세 수입으로 부모님께 조금씩 생활비도 드릴 수 있게 됐지요. 모든 자폐아가 나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의 믿음이 자녀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어요.” 그는 “한때 나를 외톨이로 만들었던 자폐가 이젠 다른 사람이 내게 관심을 갖게 만드는 다리(bridge)가 됐다”며 “저 같은 아이들에게 희망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브레인 맨’ 다니엘 타멧은
원주율 소수점 이하 2만 자리까지 척척 양치질하고 운동화 끈 매는건 쩔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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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9년 런던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였지만, 아이들 숫자가 불어나자 직장을 관두고 아내와 함께 육아에 몰두했다. 가족은 사회보장수당으로 연명했다. 타멧은 출생 직후부터 다른 집 아기들과 달랐다. 쉬지 않고 울었다. 2세 때 간질을 앓았다.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반복적으로 머리를 벽에 찧었다. 열여덟 살 때까지 동네 학교에 다녔다. 스물네 살 때 원주율 암송 기록을 세운 뒤에야 비로소 TV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함께 케임브리지 대학 자폐연구센터에 찾아가 석학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004년 3월 14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 과학사 박물관에서 한 수줍은 청년이 기자들과 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시간 9분에 걸쳐 원주율 소수점 이하 숫자 2만2514 자리를 정확하게 암송했다. 유럽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가 쓴 자서전 ‘브레인 맨, 천국을 만나다’(북하우스) 한국어판이 지난주 출간됐다.

■ 석학 증후군
책 7600권 통째 외우기도… 자폐증 가진 10명중 1명 꼴 특정분야에서 천재성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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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또는 정신지체들에 대한 발달의 장애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경이로운 기억력이나 예술적 재능을 보여주는 경우를 ‘석학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한다.

자폐증을 가진 10명 중 한 명, 뇌에 손상을 입었거나 정신박약인 2000명 중 한 명 꼴로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뇌의 좌반구가 손상을 입어 이를 보상하기 위해 우반구에 특수한 재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세기 말 이 현상에 대한 표현은 ‘백치 석학(idiot savants)’이었다. 미국 영화 ‘레인맨’(1988년작)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인물 ‘레이먼드 배빗’이 바로 이 석학 증후군 환자였다. 레이먼드 배빗의 실제 인물인 킴 피크는 미국 전역의 우편번호, 7600권 이상의 책을 통째로 암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열 살 때 처음 들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을 기억해 완벽히 연주한 레슬리 렘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자폐증 소년 화가 핑 리안도 잘 알려진 석학 증후군이다.

석학 증후군 환자들은 다른 자폐 환자에 비해 전형적인 자폐 증상이 비교적 경미하다. 반면 언어 발달 속도는 정상적인 경우가 많다. 주위에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괴짜”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