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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2 [동영상파일] 5월 8일 - 9강 공자와 장자: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강의: 김경희)
  2. 2007/09/27 070927 메모: 학습, 공부란 무엇인가?

[동영상파일] 5월 8일 - 9강 공자와 장자: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강의: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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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8. 청소년을 위한 하자인문학2, <니하우 베이징> 특강

공자와 장자―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 는 잔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기쁜 낯으로 그 약을 마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슬픔을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만, 이제 그가 그 약을 다 들이키는 것을 보고는 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어요.…저보다 먼저 크리톤은 울음을 억제할 수 없으니까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서더군요. 아폴로도오로스는 벌써부터 줄곧 울고 있었는데, 이때에는 큰 소리로 흐느껴 울어 우리들 모두의 가슴을 메어지게 했습니다. 홀로 소크라테스만이 여전히 조용했어요.
“그게 무슨 꼴인가”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네. 내가 아낙네들을 내보낸 것은 그들이 이런 창피스런 꼴을 보일까 봐 그런 거야. 사람은 모름지기 조용히 죽어야 한다고 나는 들어왔어. 조용히 하고 꿋꿋하게 행동하게.”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걷더니 한참만에 다리가 무겁다고 말하고는 반듯이 드러눕더군요. 이건 그에게 약을 준 사람이 그렇게 하라 한 것이지요. 소크라테스가 누우니까 그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다리와 발을 살펴보더군요. 그리고 한참 있다가 발을 세게 누르면서 감각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소크라테스가 “없다”고 하니까, 그 다음엔 다리를 눌러 보고는 우리에게 몸이 차가워지고 굳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다시 우리에게 말하기를, “독이 심장에까지 미치면 마지막입니다”라고 하더군요. 하반신이 거의 다 차가워진 때 그 분은 얼굴에 덮었던 것을 벗기고―얼굴을 덮었더랬으니까요―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최후의 말이었습니다. “오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게.” (플라톤,  [파이돈])

어느 시대에서든 최고의 현자들은 삶에 대해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삶은 별 가치가 없다고 …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든 사람들은 그들의 입에서 똑같은 소리를 듣는다―회의와 우울 가득한, 삶에 완전히 지쳐버리고 삶에 대한 저항이 가득한 소리를. 심지어는 소크라테스마저도 죽으면서 말했다 : “삶―이것은 오랫동안 병들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네: 나는 구원자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소크라테스조차도 삶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자신에게 나직이 말했다: “오로지 죽음만이 여기서 의사이고……소크라테스 자신은 오랫동안 병들어 있었을 뿐이다.” (니체,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삶의 비극성

[사람은] 일단 온갖 뼈와 감각기관들과 내장기관들을 갖춘 완성된 신체를 부여받으면 곧장 죽지는 않는다 해도 소진되기를 기다린다. 다른 사물들과 서로 베고 쓰러뜨리고 하면서 소진시키는 것이 마치 말을 내달리는 것과 같아서 멈추게 할 수가 없다.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죽을 때까지 일하고 또 일하지만 성공을 보지 못하고, 고달플 정도로 피로하게 일하지만 돌아갈 곳을 모르니, 애처롭지 않다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우리의 신체가 죽어서 변화하면 마음도 역시 그것과 함께 그러하거늘. 크게 애처롭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삶이란 정말로 이와 같이 암담한 것인가? 아니면 나만 홀로 암담하고, 다른 사람들은 암담하지 않다는 것인가?【一受其成形, 不忘以待盡. 與物相刃相靡, 其行盡如馳, 而莫之能止, 不亦悲乎! 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 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 可不哀邪! 人謂之不死, 奚益! 其形化, 其心與之然, 可不謂大哀乎! 人之生也, 固若是芒乎? 其我獨芒, 而人亦有不芒者乎?】([장자] "제물론")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은 흰 말이 벽의 틈새로 언뜻 지나가는 것처럼 순식간이다. 물이 솟구치듯 나타났다가 물이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다. 이미 변화하여 태어났고, 또 변화하여 죽는데, 살아있는 것들은 그것을 슬퍼하고 인류는 그것을 비애로 여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郤, 忽然而已. 注然勃然, 莫不出焉; 油然漻然, 莫不入焉. 已化而生, 又化而死, 生物哀之, 人類悲之.】([장자] "지북유")


인간다움의 완성, 자기 완성으로서의 삶―공자의 삶의 태도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질문하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가 있겠는가!” 계로가 말했다. “죽음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요!”【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논어] "선진")

증자가 말했다. “선비들은 뜻이 넓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주어진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간다움[仁]을 자기의 임무로 삼으니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야 끝나니, 어찌 갈 길이 멀지 않겠는가!”【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논어] "태백")

공자가 말했다. “의지가 강한 선비와 인간다운 사람은 살기를 구하여 인간다움을 해치는 경우는 없어도 자신을 죽여서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경우는 있다.”【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논어] "위령공")
공자가 말했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子曰, “朝聞道, 夕死可矣.】([논어]  "이인")

공자가 말했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기를 위하였는데,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위한다.”【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논어] "헌문")

자공이 말했다.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간답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찌 인간다움[仁]에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스럽다[聖] 할 것이다. 요임금도 순임금도 그때문에 애태웠을 것이다. 무릇 인간다움이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세우고, 자기가 이루고 싶으면 남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자기를 미루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인간다움을 행하는 방법이라고 할 만하다.【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논어] "옹야")
공자가 병이 나자 자공이 뵙기를 청하였다. 공자는 마침 지팡이에 의지하여 문 앞을 거닐고 있다가 물었다. “사(賜)야,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 그리고 탄식하며 노래를 불렀다. “태산이 무너진다 말이더냐! 큰 기둥이 부러진다 말이더냐! 철인이 죽어간다 말이더냐!”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자공에게 말했다. “세상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아무도 나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그 후 일주일만에 공자는 세상을 떠났다.【孔子病, 子貢請見. 孔子方負杖逍遙於門, 曰, “賜, 汝來何其晩也?” 孔子因歎, 歌曰, “太山壞乎! 梁柱摧乎! 哲人萎乎!” 因以涕下. 謂子貢曰, “天下無道久矣, 莫能宗予.…” 後七日卒.】(사마천, [사기] "공자세가")


순간의 긍정―장자의 삶의 태도

자사와 자여와 자려와 자래 네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무(無)를 머리로 삼고 삶을 등뼈로 삼고 죽음을 꼬리로 삼을 수 있는가? 누가 삶과 죽음과 존재와 사라짐이 한 몸임을 아는가? 나는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 네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빙긋이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자 마침내 서로 친구가 되었다.……
얼마 있다 자래에게 병이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곧 죽을 것 같았다. 아내와 자식들이 그를 빙 둘러싸고 흐느껴 울었다. 자려가 문병을 가서 그 가족들에게 말했다. “쉬이! 물러나시오! 변화에 놀라지 마시오.”
그는 문에 기대어서 자래에게 말했다. “위대하구나, 조화(造化)여! 또 장차 자네를 무엇으로 만들고, 장차 자네를 어디로 데려가려나? 자네를 쥐의 간으로 만들려나? 자네를 벌레의 팔뚝으로 만들려나?”
자래가 말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동서남북 어디든 가라고 명령하면 자식들은 그것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음양(陰陽)이 인간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정도가 아니다. 저 조화(造化)가 나를 죽음에 가까이 이르게 했는데도 내가 그것을 듣지 않으면, 나만 버릇없는 자가 될 뿐이지 저 음양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지금 위대한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녹여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 쇠붙이가 뛰어오르며 ‘나는 반드시 막야와 같은 명검이 될테야’라고 한다면 위대한 대장장이는 그것을 불길한 쇠붙이라고 여길 것이다. 지금 우연히 사람의 형체를 취했다고 해서 ‘사람이 될거야, 사람이 될거야’라고 한다면, 저 조화자(造化者)는 그를 불길한 사람이라 여길 것이다. 하늘과 땅을 큰 용광로로 여기고 조화(造化)를 위대한 대장장이로 여긴다면 어디를 가도 안 될 것이 있겠는가?”【子祀․子輿․子犁․子來 四人相與語曰, “孰能以無爲首, 以生爲脊, 以死爲尻, 孰知死生存亡之一體者, 吾與之友矣.” 四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俄而子來有病, 喘喘然將死, 其妻子環而泣之. 子犂往問之, 曰: “叱! 避! 無怛化.” 倚其戶與之語曰, “偉哉造化! 又將奚以汝爲, 將奚以汝適? 以汝爲鼠肝乎? 以汝爲蟲臂乎?” 子來曰, “父母於子, 東西南北, 唯命之從. 陰陽於人, 不翅於父母; 彼近吾死而我不聽, 我則悍矣, 彼何罪焉!…今之大冶鑄金, 金踊躍曰, ‘我且必爲鏌鎁’, 大冶必以爲不祥之金. 今一犯人之形, 而曰, ‘人耳, 人耳.’ 夫造化者必以爲不祥之人. 今一以天地爲大鑪, 以造化爲大冶, 惡乎往而不可哉!“ 成然寐, 蘧然覺.”】([장자], "대종사")

지극한 사람은 자기가 없고 신비로운 사람은 공이 없고 성스러운 사람은 이름이 없다.【至人无己, 神人无功, 聖人无名.】([장자]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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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27 메모: 학습, 공부란 무엇인가?

노트하던 중간에 컴퓨터가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노트한 것을 잃었어요.
생각나는 대로 중간에 수기로 재빨리 요약을 했지만 충분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여러분 노트가 더 필요했던 모양.
빠진 부분들은 각자의 노트와 라디오파일을 참조하고요,
몇 개 단어와 순서들만 확인하기 바랍니다.
(노트한 것이 있어 뭔가 조정하고 싶거나 하면 205호로 오세요. 함께 고칩시다. 환영!!!)


공부란 무엇일까1 : 재미있어서 배운다

과제읽기(토토의 글 중에서) : (전략).....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자기만족감? 또는 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살다보니 정말 많~이 알고 있고, 많~이 경험해 본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게 됐다. 정말 그런 사람들을 동경하게 된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때 공부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저번 주에 나눠준 뇌에 관한 글을 읽어보고 나서 알게 된 건데, 새로운 어떤 것을 이해하려고 할 때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뇌가 끄집어내서 연결시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예전에 들었던 어떤 것이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이해가 될 때, 그 만족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분이 너무 좋다. ......(후략)

과제읽기(조화의 글 중에서) : (전략)......내가 공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나서부터 일 것이다. 그전 까지는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기가 죽었다. 사실 책을 좋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읽을 때 온전히 글자를 읽기만 했었던 것 같다. 이야기들 속에 묻어있는 교훈을 발견해 내거나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는 생산적인 일은 생각해 볼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새 나이가 들면서 사춘기가 찾아오고 많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일까?’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와 같은 주로 형이상학적인 주제의 질문들이었다. 또 함께 많은 사람들과 먹고 자고 한 철학을 나누는 공동체 생활 속에서 인간관계 맺기를 해나가며 생기는 고민들, 그렇게 온갖 고민들이 나를 뒤흔들어 놓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고민들을 많이 생각하고 또 써보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가지는 고민들(예를 들어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해쳐나갔을까? 이 같이 궁금증이 가득한 마음가짐으로 다른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가 책이나 다른 사람들을 접하는 자세는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세로 고민을 해왔기 때문에 진지하게 해결해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주제들에 나의 온 집중이 쏠렸다. 이렇게 무엇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보려는 자세가 공부를 좋아하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다. 또 생각하고 해결하고 알아가기를 좋아하는 자세는 인문학의 세계와 통하여 학교에서 인문학 수업을 듣고 스스로 심리학 수업을 개설해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수업들을 통해 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그리고 삶을 성찰해보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중략)......그렇다면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무엇에 대해 알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겐 무엇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이 즐거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러 주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보고 회의해보는 과정이 내게는 재미있는 게임처럼 느껴진다. ......(후략)

재미를 가져오는 것, 호기심
영화 아일랜드(The Island, 2005)에서
클론들을 만들어낸 설계자는 스스로 한 가지 실수를 고백하고 있는데,
그 실수란 복제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복제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호기심(curiosity)이다.
그 호기심이 발동해서 설계자의 시도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갇힌 '감옥과도 같은' 세상을 벗어나듯이
재미있는 것, 궁금한 것 그래서 (저절로) 배움을 시작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배움은 자기 내부에서 그 동기(재미, 호기심 등)가 찾아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필요에 따라 자기것으로 "동기화"motivation할 수 있다.


공부란 무엇일까2 : 필요해서 배운다

과제읽기(정인의 글 중에서) : (전략)......사람은 환경을 닮아가기 마련인데, 이러다 점수와 시험에 시야가 갇히진 않을까 싶어 두려워졌다. 그래, 진짜 공부는 외모를 꾸미듯 자신을 좀 더 가꿔나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과 마음이 깊어져 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되니 타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부의 가치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후략)

탈북자들이 하는 얘기 중에 "북에서는 배고파서 못살겠고, 중국에선 무서워서 못살겠고, 남에선 몰라서 못살겠다"고 하는 것이 있다. 한국어는 외래어가 많고 특히 길거리를 다니다면 간판 같은 것들이 외국어로 표기된 것들도 많아서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중국어를 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워낙 절박했기 때문에 배우게 된 것. 이태원에서 장사하는 분들도 영어나 일어를 꽤 잘 하는데, 이들도 학교에서 배우거나 한 것이 아니고, 현장에서 "필요해서" 습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문화의 발견>에도 나오는 얘기인데, 남미에는 street children이라고 불리는 떠돌며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 산수를 배우지 못했지만 기가 막히게 계산을 잘 한다. 수학자들의 연구결과 이들은 나름의 계산법이 있고, 서로 서로 가르친다는 것인데, 그것을 수학자들은 street mathematics라고 불렀다.


공부란 무엇일까3 : 보상 때문에 배운다

고시공부처럼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보다 (고시공부가 재미있어서 한다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 다음에 올 것을 기대하며, 칭찬이든 부나 명예와 같은 것이든 보상을 기대하며 공부를 할 수도 있다. 공부의 이유가 자기 바깥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하기싫은 공부를 하다가도 어느 선을 넘어서면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보상때문에 하는 공부가 모두 재미없고 싫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대체로 보상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되면 (과제글에서 많이 언급이 되었듯이) 공부하기가 싫어지기 십상인데, 그런 공부가 그 자체로 재미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평가가 앞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공부할까?

성경의 시작은 창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거대하고 중요한 것.
논어의 시작은 어쩌면 좀 사소하고 작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The Master said,
'Is it not pleasant to learn with a constant perserverance and application?'

습(習)이란, 단순히 머리로 외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거의 "습관"처럼, 몸과 분리되지 않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 "때로 익히면"이라 하여 오해의 여지가 생겼는데 - 수시로 익히면 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
영어로는 with a constant perserverace and application이라고 하여
항상성과 지속성, 응용력을 강조함으로써 훨씬 그 뜻을 잘 드러나고 있다.

I hear and I forget. I see and I remember. I do and I understand.

논어의 두 번째 문장은

子曰,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Is it not delightful to have friends coming from distant quarters?

멀리서 친구가 찾아온 것
그런데 고전을 읽을 때는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라
당시의 사람들은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공간에서는 신분으로 짜여진 친숙한 관계만이 있다
교통도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멀리서 찾아오는 것이다
왜 찾아오는가
학이시습지와 연결하여 생각하면 그 친구는 배움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이며
"학연"의 친구.

공부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진짜 공부는 "배움의 인연"(학연)을 만들어가며 함께 배우는 것이다.

과제읽기(호랑의 글 중에서) : (전략)......그렇게 혼자서 무언가를 하다가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을 때,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무언가 하는 것도 공부라고 할 수 있지만, 여럿과 함께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무언가 배우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에게서 배우고 느끼는 것,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공부가 아닌가한다. ......(후략)

세번째 문장은

子曰,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Is it not a man of complete virtue, who feels no discomposure though men may take no note of him?

라 하여,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그것이 "군자"라고 하고 있다.
군자란 인간의 어떤 경지(man of complete virtue)에 대한 언급이며
가진 게 없어 속이 허한 사람, 줏대가 없어 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측은지심을 느끼게 되는 것.
그래서

Real knowledge is to know the extent of one's ignorance.

무지한 정도를 아는 것이 지식이며,

경계할 것:

Learning without thought is labor lost; thought without learning is perilous.

사유없는 배움은 헛되고,
배움이 없는 생각은 위험하다. (독단적dogmatic이 된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공부이다
그리고... 자유로와지기 위해 공부한다


과제읽기(름사의 글 전문) :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나 그랬다. 십대 때는 자유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와 부모님 그리고 모든 일상이라는 외부의 억압들이 나의 적이었다. 그런데 십대가 지나자 나는 그것들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었고 내가 느낀 것은 자유가 아닌 알맹이 없는 허망함뿐이었다. 진정한 자유란 뭘까? 너무 괴로웠다.

지금 이십대가 된 나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사실 그게 어떤 것인지는 굉장히 막연한 느낌인데 그냥 나란 존재가 있지만 내 있는 곳으로 바람도 지나가고 꽃도 피고 사람도 품고 한다고 해야 하나. 어떤 자신이든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전환의 시각으로 세계를 요리조리 뒤집고 살피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나는 공부한다. 예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전부라고 고집을 피우고 세계의 다문 입을 모른 척 했다. 무지했던 나에게 앎이 생명과 자유를 선사했다. 새로운 앎이 이전의 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를 세운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앎이 또 새로운 나를 세운다. 끊임없이 자신을 무너뜨리고 싶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신을 세우고 싶다. 지금은 다른 이들의 말과 글에서 깨달음을 얻지만 열심히 공부해 스스로 나를 부수고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내가 공부하는 이유다.

episode1. 2004년 12월 태국에 쓰나미가 닥쳤다. 쓰나미는 지진에서 시작된 해일을 말한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지만, 코끼리 때문에 목숨을 구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해일의 기운을 느끼기 어렵지만, 동물들은 그 기운을 느끼고 도망치는데 사슬에 묶여있던 코끼리들이 산으로 뛰어올라가는 바람에 사람들이 뒤따라 올라가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다. (부화뇌동附和雷同한 것이 목숨을 구했다고 할까...? - 김찬호선생님의 농담)
중요한 것은, 이때 코끼리들이 묶인 사슬을 부수고 도망쳤었다는 점인데, 평소에도 그 사슬을 부술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그 사슬에 익숙해져서 당연히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다.

episode2. 최근 장기수들이 출소하게 되면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이런 글을 썼다. 지난 50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해보지 못했던 것, 그리고 출소하면서 처음 해보게 된 어떤 일 때문에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문을 여닫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정도의 문제이지 자기감옥을 스스로 만들고 살아간다.
공부를 하는 것은 그런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는 것이다.
름사의 글에서 '자신의 존재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에 대해서 얘기해서 놀랐다.
끊임없이 나를 부수고 새로 세우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려는 공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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